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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5. 2021

12.[난임일기] 당당한 난임부부

난임이라는 것이 그늘 아래 숨어야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본인의 힘겨운 일이나 슬픔을 말하고 싶지 않아한다.


'나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저사람보다는 내가 낫지. 내가 더 행복한 삶이야.'라는 생각의 '저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술자리에서 'OO가 ~~한 일이 있어서 힘들대. 어쩌면 좋아.' 하고

 의미없이 언급되는 안주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그랬구나, 힘내.'라는 의미없는, 하나도 힘이 되지 않는,

일말의 공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답변을 듣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내가 아는데 ~~하면 괜찮아진대.' 제 딴엔 위로라고 건낸 말이겠지만


내 속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라는 마음이 생겨

나 자신을 속좁은 사람으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타인의 삶에서도 제 각각 힘듦이 있을텐데 내가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내가 짐이 되고 어두운 기운을 풍기는 바람에 안그래도 힘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싶지 않아

떠나갈까봐 두려워서 일 수도,


자꾸만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진짜 더 힘들어질까봐 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다들 꾸욱- 하고 아픔을 삼킨다.


견디기 힘들어 질 때, 누구라도 붙잡고 안겨 울고 싶어질 때,

'나 좀 살려달라.'는 말이 목 끝에서 간질간질할 때,

여태 내가 참아왔던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만 더 참자고 꾹 참는다.


많은 난임 부부가 그렇게 꾸욱- 누르고 살고 있다.


그나마 난임정보를 나누는 카페에 가서야 나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터놓고,

서로 몇 줄의 짧은 위로를 나눌 뿐이다.

그 몇 줄의 위로가 참으로 소중하면서도,

 누군가의 진심어린 공감과 위로가 느껴지는 표정을 볼 수도 없고,

서로의 체온을 나눌 포옹을 할 수도 없기에

마음 한 켠에는 약간의 아쉬움과 외로움이 잔잔히 남는다.



어제는 설레발을 쳤다.


나의 여성난임검사 결과를 듣고 왔다.

내 나이보다 난소 나이가 다소 많지만,

다른 부분들은 정상이라 서둘러 임신을 준비하면 무리가 없겠다고 했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다.

배양기술이 좋다는 서울 병원으로 가야하나,

아니면 집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검진을 받아도 부담이없는 곳으로 가야하나,

하고 고민을 했다.


더 나아가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관시술 병행은 어떻게 해야하나.'를 생각했다.

'피 검사를 자주 받아야해서 일주일에 두번 씩 병원에 가는 경우도 있고,

대기가 길면 3시간씩 기다리기도 한다는데,

내가 모아둔 연차휴가로 충분할까? 안되면 병가를 써야하려나? 병가 결재를 안해주면 어떡하지? 안그래도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다는데

직장에서 뒷말이 돌고 욕먹으면 어떡하지?

나쁜 부서장을 만나서 결재할 때 마다 차가운 얼굴을 마주할 때 내 마음이 버텨줄 수 있을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그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몹시 억울해졌다.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난임부부인게 큰 잘못이 아닌데,

'난임진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기 전에

왜 그렇게 고민을 해야하며, 마음에 큰 준비를 해야하는지 억울했다.


세상은 저출산이 심하다며, 고령화 사회로 더더욱 빠르게 진입하고 있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짊어질 세금부담이 엄청나다며,

아이를 많이 낳아라. 하고 말을 하면서도 난임진료를 받는다는 것이

왜 이렇게나 눈치 볼 일이 되었는지.


물론 직장에서의 업무량은 정해져있고,

내가 병원에 다님으로 인해서 업무에 공백이 생긴다면

같은 부서의 동료들이 고생할테니, 직장에서 꺼리는 이유도 알겠고,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조금은 이해받고 싶은 것이 다 사람마음 아닌가.


'난임이지만, 우리 부부를 닮은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그래서 병원은 다녀야겠고.

하지만 집안 가계 형편 상 벌이를 그만둘 수는 없으니 회사도 다녀야겠다.'

너무 큰 욕심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고

누군가 법적으로 정해둔 것도 아니지 아니한가.


나날이 결혼연령은 높아지고, 난임은 많아지고,

물가는 올라서 외벌이로 살아남기에 힘든 세상을 만들어놓고

난임부부가 눈치까지 봐가며 살살거리고 살아야하는 인생이 참 억울하다 싶었다.



난임부부라고 말하는 순간 불쌍하다는 눈빛도 받기 싫다.

어딘가 몸에 큰 문제가 있다는 듯 쑥덕거리고 이야기하는 대상이 되고싶지도 않다.

내게 아무리 큰 일로 느껴지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럴수도 있는 일' 이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모두가 몸 한구석에 조금씩 수치가 안좋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던가, 혈압이 조금 높다던가, 당이 있다던가,

위장이 약해서 화장실을 자주간다거나,

아니면 우울감이 있다거나, 불면증이 있다거나, 홧병이 있다거나,

현대인이라면 조금씩의 아픔은 다들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난임'이라는 것이, 그 원인이 어떤것이든 간에, 어딘가에 숨거나 눈치보고 살고

말하기 어려운 일이기보단 그냥 담백하고 가벼운 문제였으면 좋겠다.


마음에 부담 없이

 '난임이라, 서로 의지하며 노력하고있어요. 잘 될 거예요. 괜찮을거라 말만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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