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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31. 2021

15.[난임일기]수술을 준비하는 마음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와 담대한 나의 신랑

미세다중 수술을 앞두고서 몇일은 잠을 통 이루지 못했다.

걱정이 있으면 원체 잠을 못자는 나로선 그럴거라 예상했지만,

예상했다고 해서 불면과 걱정이 나아지진 않는다.


너무 큰 수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혼자서 괜찮을까, 괜히 나의 욕심때문에 우리 신랑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수술을 기다리는 1달 동안에는

하루하루가 빙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잘될거라 생각하는 날엔 안전하고 큰, 단단한 얼음판 위에 올라가 있는 듯 했고,

걱정이 되는 날엔 자꾸만 그 얼음판이 작아지고 얇아지고 나는 미끄러지는 듯 했다.

건드리면 툭-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거나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을 듯 했다.


수술 2일 전에는 수술 가방을 하나하나 챙겼다.

어떤 상황이 될지 몰라 넉넉한 속옷 하나와, 조금 조이는 속옷 하나를 챙기고

거동이 불편할까 물 500ml 두통과 누워서 마실 수 있게 빨대를 준비했다.

씻지못할 상황에 찝찝할까 물티슈와 작은 로션샘플도 넣고, 이는 닦아야지 하고 치약칫솔을 챙겼다.

입원실이 춥다는 말이 있어 후드짚업도 하나 넣어주었다.

전날 12시부터 수술당일 저녁까지 금식이기에,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후에 먹을 수 있는 간식들도

신랑이 평소 좋아하던 초코과자들을 한가득 챙겨넣었다.

비염이 심해 2년이 다되가는 코로나시국에 매번 기침콧물로 오해를 받는 아픔이 있기에

비염약도 챙겨넣고, 병실에서 신을 슬리퍼와 심심하지 않게 패드와 이어폰을 챙겨넣었다.


그놈의 코로나가 4단계가 되어 보호자도 병원에 들어갈 수 없고, 면회조차 불가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많이 아플 수술인데,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깝고, 무너지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수술 전 후에 조금이나마 내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까 하여 편지를 써 고이 접어 넣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병원에 가게 될 상황이 되면, 휴가가 부족할 것 같다는 이유로

혼자 서울의 병원까지 수술하러 보내다니, 나 자신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 괴로웠다.

얼마나 무심한 인간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어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또, 자책하고, 실망했다.


드디어 수술 전날이 밝았다.

둘이서 시간을 더 보낼까, 어디 놀러라도 갈까, 하다가

평소처럼 일요일 오전 필라테스를 함께하고, 집안일도하고, 낮잠도 잠시 잤다.

다음주엔 둘다 바쁠 것 같아 집안의 쓰레기까지 몽땅 한번에 버렸다.


오후에는 우리의 두번째 소개팅 날이자, 연인이 되기로 약속했던 날 방문했던 카페에 다녀왔다.

나는 디카페인 아인슈페너를 시켰고, 신랑은 자몽에이드를 시켰다.

5년전 가을에는 내가 자몽티를, 신랑은 따뜻한 밀크티를 시켜

서로 수줍게 마주 앉아있었던 기억이 났다.

선선한 가을 날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적당히 어둑한 카페의 창가에 앉아 재즈음악을 들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악 소리가 좋았다. 신랑을 앞에 둔 배경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천장에 달린 선풍기 바람에

화분의 푸른 잎사귀가 살랑-흔들렸다. 모두가 맛있는 음식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행복했다.

그 속에서 우리도 행복했다. 잠시나마 이 상황을 잊고 과거로 돌아간 듯 했다.


무슨 대화를 했을까. 2시간이나 넘게 대화를 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저 혼란스러운 머리속을 숨기지 못하고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대화 주제를 던졌던 것 같다.

소개팅으로 두번째 만나는 날보다도 침착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 기억나는 생각은 "잘될거야, 분명 잘 될거야." 라는 말 뿐이다.


혼자있으면 당장에라도 쓰러질듯 불안이 엄습했는데, 신랑이 곁에 있으면,

손을 잡아주면 한결 안정되었다.

걱정하는 나를 위해서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걱정이 없어요, 잘될거니까." 라는 노래를 불렀다.

고마웠다.

'이까짓 수술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라는 말을 계속 내게 해주었다.

그 말을 내가 해주었어야 하는데, 나의 그릇이 작아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오후 5시 쯤부터는 초조함에 자꾸만 손을 만지작 거렸다.

머리 속에 누군가 큰 징을 울리고 간 듯 멍했다.


오후 7시 쯤부터는 그냥, 갑자기 잘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졌다.


잠들기 전에,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수술 결과가 좋아서, 부작용없이 회복도 빨라서, 우리가정에 예쁜 아이가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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