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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8. 2021

14.[난임일기]이토록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던가

불확실한 미래에 의지할 것은 오로지 우리 둘

난임은 내게 기다림을 가르쳤다.

아, 강제로 가르쳤다.


나의 인생 성장 동력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뿌리깊게 자리잡혀 있었고,

'한번 할 때 10정도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는일을, 실패 후 다시 하려면 30만큼 노력해야한다' 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시험공부를 할 때, 대학에 진학할 때, 취업을 준비할 때,

인생의 큰 불확실성 앞에서 나는 실패하지 않기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내가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은 원하던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3차례나 떨어졌을 때 배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는 일은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란걸 배웠다.

세상에 회사는 많으며,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많이 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는 '내가 노력해서 안되는 일은 없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 사실을 마음 속 깊이 가져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거늘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노력해서 되게 만들고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난임을 겪는 많은 사람들은 '임신과 착상은 신의 영역이야.'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내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니,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너무 마음고생하지말고, 애쓰지 말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난임'판정을 받고는 인생 처음으로

 '내가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의 문제'
에 봉착했다는게 비로소 느껴졌다.



자연임신이 될 줄 알았다

-1년이나 기다릴 줄은 몰랐지.


우리는 결혼 3년차에 접어들면서 1년의 시간을 자연임신 준비와 시도에 할애했다.

엽산과 종합영양제를 챙겨먹고, 배란일을 보겠다며 배란테스트기를 구입하면서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라기도 했고, 산부인과에 가서 배란초음파를 보고 임신 가능성이 있는 날을 받아오기도 했다.

월경이 늦어질 때면 '혹시..?'하는 마음으로 매번 임신테스터기를 썼고, 진짜 장난하나 싶게 한줄을 본 뒤 2-3일내로 월경은 다시 시작되었다. 내 몸이 나를 놀리는 듯한 기분에 정신과 육체 자아가 분리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간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예쁜 아이가 찾아와줄거란

확신이 있었다. 오히려 회사 일이 힘들때면, 아, 지금 생기면 쉽지않겠다. 라고 배부른 생각까지 했다.


난임 병원 검사를 예약하고, 검사를 받고,

또다시 결과를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

-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가 자주, 가까이에 있었던가.


o 무정자증 판정

 신랑이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무정자증 판정을 받고, 3일 내로 서울의 큰 병원에 검사예약을 했다.

그나마도 신랑이 병원에 버스를 타고 오갈 수 있는 집에 살고, 병원에 오갈 수 있는 직종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가 절대 휴가내기도 힘들거나 지방에 살았다면 이 일조차도 너무 힘겨웠을 것이다.

    

o 정밀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3주의 시간

3주가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이미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해진 것일지 모르지만, 수능시험결과와 취직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도 이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 기간동안은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 음주도, 흡연도 하지않고 비교적 나이가 어린 우리 신랑이기에 '비폐쇄성'이 아닌 '폐쇄성' 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 서로 예민해져있어 조그마한 일에도 다투곤 했지만, 대체적으로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지내왔다.


o '비폐쇄성 무정자증' 진단 후 수술을 기다리는 1달의 시간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 우리가 예약한 병원은 주 2회, 1일 2명 정도만 수술을 받을 수 있어 예약도 쉽지 않다.

이토록 내 삶에 불확실한 시간이 있었던가, 이토록 어떤 것의 결과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든 적이 있었던가.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는 모든 이들이 내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걱정하지마. 정말, 진짜 다 잘될거야.
이런 일이 있었나 싶게 금방 바라는대로 될거야.
다 지나가는 추억일건데 뭐하러 그리 걱정을 해~

라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가득하다. 아무도 나를 모르겠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모르겠지만,

아무도 내 아픔에 관심없겠지만, 그냥 한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미래에서 왔어요. 예쁜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봤어요. 정말 행복해보였답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사람이라도, 도를아시나요 물어와도 좋으니 그리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싶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옛날에 유행했던 Free Hug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어느 길목에서

'그냥 다 잘 될거야.'라고 한마디 씩만 해주세요, 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듣고싶다.

그렇게 많이 들으면, 모든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정말 '다 잘 될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욱 더 붙잡고 사랑해야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부부가 우선이다.' 


우리는 아이가 찾아와 우리가 부모가 되어 양육을 하게 된다면,

우리 서로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제나 말해왔다.

부부 두 사람이 서로 애착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해야 아이도 안정감을 느끼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기에, 우리는 더욱이 서로를 단단히 붙잡아야한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많은 오르막길과 불확실한 기다림이 기다린다.

좋은 수술결과가 나와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게 된다면, 난포를 키우기 위해 자가주사를 놓고, 건강한 난자를 채취할 수 있을지 기다려야하고, 배아를 수정시키고 배양이 잘 되길 기다려야하고, 착상이 잘 될 때 까지 1차, 2차, 3차 피검사 결과를 기다려야한다. 그리고 건강한 아이를 만나기까지 10개월을 기다려야할 것이다.

그 뒤에는 아이가 자라면서 맞닥뜨릴 수많은 성장통에서 우리는 덤덤히 아이를 믿고 바라보며 기다려야 할 것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이 늦더라도, 말이 늦더라도, 다소 걱정되는 일들이 있더라도,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따뜻한 눈빛으로 기다려줘야한다.

우리에게 와주었다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아이를 양육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아이가 커서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갈때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또한 서로 더욱 사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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