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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Sep 01. 2021

16.[난임일기]친정 엄마도 모른다. 난임의 아픔을.

부모에게 위로와 공감조차 얻을 수 없다니, 슬프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난임부부들에게는 부디,

양가 부모님께 난임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 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차라리 몇년지기 친구가 더 도움이 될지도, 더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엄마에게 난임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또한, 나의 힘듦을 버틸 능력이 부족해서 였다는 사실이 여전히 나를 힘들게한다.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힘든 일이 찾아왔는지,

1%라는데 왜 하필 우리 신랑인건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내가 왜 임신과 출산을 뒤로 미뤘는지,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이었는지,

왜 나는 모든 삶의 관문에서 이리도 쉽게 넘어가는게 없는지,

남들은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회사에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축복가득한 양가 가족의 축하 아래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어가는데

어째서 우리부부에게는 그 화목한 가족의 결성이 이리도 힘든건지."


그래, 우리엄마의 작은 그릇에 내가 넘치도록 힘든 이야기들을 퍼부은게 문제다.

또다른 문제는, 사실 난임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엄마는 위로의 말로

"네 인생에 네 자신이 중요하지 애가 뭐가 중요해.

 부부가 있고 애가 있는거지, 부부 둘이 행복하면 된다.

 입양을 해도 되고, 삶에 정해진 답은 없어.

 생각만 고쳐먹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어."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수술 전 가족모임의 자리에서, 엄마아빠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 기도중에 동생의 직장에 대한 기도는 한가득 있었지만

내 직장에 대한 기도는 단 한줄도 없었다. 섭섭했다.


몇일 후 또다시 불확실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고 힘들다고 하자, 엄마는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애 못가진다고 그렇게 힘들어하는게 말이나 되니?

 세상에 맨날 너만 힘든 줄 알지?

 엄마도 늙어가면 약해지고 힘든데, 힘은 못되어줄 망정 굳이 더 부모를 힘들게 해야겠니?

 인생이 힘들면 아둥바둥 살지마. 누가 너더러 그렇게 아둥바둥 살라고 했니?

 회사가 힘들면 퇴사를 해. 좋은 회사 다니게 된걸 감사할줄은 모르고,

 물론 네 성격에 잘 안맞는다지만 그 회사 못들어가서 우는 애들은 뭐가되니?

 집 대출때문에 힘이 들면 집을 팔아!"

라고 퍼부었다.


그래, 내가 죽을만큼 힘들다고 이야기한게 잘못인가보다.

난임도 힘든데, 직장 인사이동도 겁이나고 무섭다고 이야기한게 잘못인가보다.

내가 무언가 부모한테 기대한게 잘못인가보다.


우리 부모님이 달라졌을 줄 알았다.

나이가 들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많이 해서

내가 힘들다는걸 더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기를 기대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바보같이 변했다고 믿었다.


언제나 그랬다.

우리엄마는 언제나 본인의 삶이 버거웠다.

대부분 인생을 가정주부의 역할을 하면서 나름 말 잘 듣고 건강한 두 딸을 키워내고

밖에서 돈을 벌어오느라 스트레스가 많으면 말을 잘 안하지만

가끔 장난도치고, 이제는 엄마가 귀중한 줄 깨달은 아빠와 함께 살면서

대체 뭐가 그리 버거운지 나도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니, 사실 알고싶지 않다.


어릴적부터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힘든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면서

내가 참다참다 더이상 못듣겠다 싶어

"오늘은 나도 힘들어. 나한테 부정적인 이야기(사람들에 대한 험담이나 아빠와 싸움이 있은 뒤) 그만해."

라고 이야기하면

"내가 큰 딸 한테 힘든 이야기도 못하면 어떻게 사니?

내 딸이면서 힘든 이야기도 못들어주니?"

라고했다. 겨우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한테.


그렇게 엄마는 언제나 본인의 아픔을 내가 들어주고 치유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듣기를 회피했다.
도무지 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나는 듣고싶지도 않고, 들을맘도 없고,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라는 표정을 하고 멀뚱히 TV를 보거나 때로는 그만하라고 짜증내고 화를냈다.



언제나 그게 상처였다.

가족 상담을 했을때, 엄마는 언제나 본인이 힘겨워서 딸의 아픔을 알면서도 외면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걸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직도 내 힘듦을 안아줄만큼 큰 사람이 못되었다.


아, 또 한번 깨달았다.

세상에 나 혼자구나. 친정 엄마조차 내 아픔을 몰라주는구나.


이사실이 무척이나 서글프고 외롭다.


난임 카페를 보면 시어머니한테 난임 사실을 털어놓고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의 사유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내 아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거나, 여자가 문제인데 내 착한 아들이 여자에게 홀려서 거짓말로 자기가 문제라고 한다거나, 우리 아들 아플지도 모르니 시험관시술은 생각도 말라거나(남편 수술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원하지도 않는 형제, 시아버지의 정자를 공여해서 아이를 낳으라거나, 난임이어도 딸이면 낙태를 해야한다거나...


가뜩이나 이런 무시무시한 경험의말들이 가득한데

고부갈등을 겪고 있는 나로서는 시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위로받을 생각은 단 0.00001g도 하지 못한다.

(바보같이, 친정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위로와 사랑을, 결혼하면 시어머니가 조금이나마 해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다. 나정도면 훌륭한 며느리감이라고 혼자 판단하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받으며 지내기에 나도 그렇게 사랑받을거라 혼자 재단하고 기대했다.)


그래서 친정엄마라도, 어릴땐 그렇지 못했더라도, 위로해주길 바랬다.


그 기대와 생각이 처절히 무너진 오늘의 상처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언젠간 잊혀지겠지, 하고 또다시 마음속에 담아야 할것이다.

이렇게 글이라도 써내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엄마가 더 늙고 약해질 때, 내가 힘듦을 토로했던 날들을 죄스럽게 생각하게 될 그 날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죄스러움에 대하여, 내게 친정엄마에게 위로받을 인생 티켓 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한번 더 아파서, 내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많이 미워하고 원망할지 모른다.


아, 오늘은 참 어렵다.

이렇게 정서적인 공감과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자란 내가

과연 부모가 된다고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은영 박사님은 어릴 적 상처가 있던 엄마도 충분히 따뜻한 엄마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믿고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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