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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Sep 06. 2021

17.[난임일기]신랑의 수술 날

간절한 기도로 기다리며

비폐쇄성 무정자증 진단을 받은 후

오르락 내리락 감정의 선을 따라 춤을 춘지 한달이 되던 날,

우리 신랑의 수술 날이었다.



코로나 4단계로 보호자 출입이 불가능해,

나는 아침에 회사로 향하고,

신랑 혼자 서울의 병원으로 향했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큰 수술이건만, 무거운 입원 가방을 혼자 메고 보내는 마음이 착잡하였다.



신랑은 오전 10시경 담당의 선생님을 만나, 대략적인 수술일정을 안내받았다.

입원 수속을 밟고, 수술은 3-4시경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될 것 같아 수술을 1시 30분으로 당겨주셨다.

10시경 교수님을 만나뵙고, 입원수속을 밟고 짐정리를 마치고, 잠시 누워 쉬다보면

간호사 선생님이 수술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안내를 해주신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서는, 수술방에 들어갈 이동형 침대로 옮겨져 수술실로 향하게된다.


오후 1시가 되고, 신랑은 내게 '다녀올게요. 다 잘 될거야. 걱정마요.' 라는 말을 남기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 소요시간은 1시간여라고 했다. 하지만 마취가 끝나고 몇시 쯤 연락이 올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이 병원에 가지 못하더라도 연차를 낼까, 하고 고민했었다.

그런데 도무지 집에서 혼자 그 시간을 버티고 기다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끼여 꾸역꾸역 일을 하면,

잠시간 오늘 신랑이 수술이란 사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나면 금방, 연락이 와서 안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우리 신랑은 수술때문에 어젯밤 12시부터 저녁6시까지 물한모금 먹지못하는 금식을 해야 했는데

나 혼자 회사에서 점심밥을 먹자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밥을 잘 챙겨먹고 나부터 잘 챙겨야,

수술 후 돌아온 신랑의 간호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힘을냈다.

밥을먹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든 웃어보려했다.


수술실에 들여보내고서는,

업무를 손에 잡을수가 없었다.

지금은 내게도, 우리 신랑에게도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친정가족들과 신랑의 오랜 친구분에게도 수술에 들어갔으니,

건강하게 수술을 마치고 잘 회복하고, 수술결과또한 잘 나오기를 기도해달라 부탁했다.


나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그동안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못난 크리스천이지만,

이렇게 원하는 것만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복신앙자이지만,

이번 한번만 도와달라고, 제발 한번만 도와 달라고 소리내 기도했다.

앞으로는 둘이서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도 더 많이 가질테니 도와달라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닮은 아이를 허락하시면,

그 아이도 교회안에서 키워내겠다 약속한다 기도했다.

아이를 낳고 세상의 많은 욕심을 품게 하기 보다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로 키워내서

세상에 사랑을 나누고, 세상을 보다 따뜻하게 물들일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겠다 기도했다.



여지껏 내 삶에 가장 큰 힘이되어주었던 우리신랑의 회복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했다.

마취로 수술이 시작되고 끝이나는동안,

의사선생님 손길에 함께하시어 우리 신랑의 몸을 안전히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1시 반 쯤 시작된 수술, 3시 30분쯤 신랑에게서 깨어났다는 연락이 왔다.

'아, 무사히 끝났구나.'하는 감사한 안도감과 함께

신랑과 함께하는 지난 5년동안은 들어본 적 없는

언제보다도 아프고, 지친 목소리가 마음을 푸욱- 아리게 찔렀다.

"수술 자체는 잘 되었다고 하셨어. 결과는 내일 아침에 나온대."

"2시간 내로 소변이 나와야하고, 3시간 내로 물을 마실 수 있고, 그 뒤에 괜찮으면 죽으로 식사해도된대."

한가득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는말을 들으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어느때보다도 길었고, 그 어느때보다도 우리가 함께 겪은

큰 2시간이 지나고서야 연락이 되어서 느끼는 안도의 눈물이었고,

수술의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신랑에 대한 마음아픔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고맙게도 신랑은 연애시절 때 처럼

나의 퇴근 길 내내 전화통화를 이어가주었다.

내게는 "무통주사가 들어가서인지, 생각보다는 많이 안아파." 라고 해놓곤,

뒤로 간호사선생님께 '진통제 하나만 더 주세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 굳이 괜찮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함께 영상통화를 하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거의 18시간을 굶은 그는, 그제서야 죽을 먹고, 내가 챙겨준 초코과자들을 한아름 맛있게 먹었다.

분명히 아플텐데, "유튜브 먹방 보여줄게~"하면서 '하암~' 하고 먹는 그가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가 기다리던, 수술이 끝이났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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