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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Sep 03. 2021

얼마든지 아플 수 있는 권리2

기억하자,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

큰 교통사고 이후에도 누구도 내 편이 아니었다.


결혼 후 6개월동안 우리 신랑은 수도권 남부에서 북부 끝까지 통근을 했다.

잠시 주말부부를 하면서 통근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어떻게 신혼에 따로 살 수 있냐며, 데이트 후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을 했는데 

따로 살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던 신랑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자 그 먼거리를 하루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러던 어느날에, 커다란 지프트럭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고,

휘청거리던 지프트럭은 신랑이 탄 중형차를 4차선에서 1차선 끝까지 밀어내고서야 멈췄다.

다행히 육안으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차량 반쪽이 모두 상해 크게 수리를 해야할만큼 큰 사고였다.


운전석이 오른편에 있는 외제차였다면, 목숨을 위협할 만큼 큰 사고였다.

작은 타박상 외에는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웃는 신랑이 바보같았지만,

그리 큰 사고를 겪고도 무사히 살아돌아와줘서, 그 당시 얼마나 가슴을 쓰러내렸는지 모른다.


우리남편은 본인의 아픔 앞에서는 참 바보같다.

작은 아픔에는 '호- 해줘' , '나 아파-, 안아줘.' 하고 챙겨주고 간호해주길 바라면서

진작 정말 치료와 간호가 필요할때는 "나 안아파, 괜찮아. 진짜 괜찮아. 하나도 안아파." 하는 사람이다.


입원도 하고, 치료도 받고, 병가를 냈어야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맡은 책임을 다하고자 그 먼 출퇴근 길을 이어나간 신랑이었다.

일주일에 고작 1-2번 병원에 가기위해 조퇴를 했는데, 

신랑 직장의 그 못되고 나쁜 사람들은 험담을 해댔다.

심지어 부사장급 되는 사람은, 근태가 불량하다며 분위기를 해친다는 말까지 했다.

동료 직원들에게도 험담을 했는지, 점차 신랑을 대하는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럼에도, 이 착한 신랑은 그 어디에도 부당한 대우라고 외치지 못했다.

아직도 가끔, 신랑은 그 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하곤한다.


그렇게 내 몸 부서지는지도 모르고 일을 이어나갔는데,

2주 조금 지나고 나자 몸의 긴장이 풀렸는지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병원가란 말에 귀찮다고 일관하던 신랑은 진짜 아팠는지 

그때서야 뒤늦게 정형외과와 한의원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통사고는 당일 입원 및 치료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그땐 우리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어 그런줄도 몰랐던거다.


그렇게 겨우 1주일 몇시간 간단한 물리치료만 이어가면서 책임을 다했건만,

떠나기 직전까지 신랑에게 돌아온건 차가운 대우였다.


내가 아파도, 그 누구도 내 아픔을 알지 못한다.

똑같이 겪지 않았기에 그 아픔의 크기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한다.

남들이 근태를 가지고 욕을하든, 꾀병이라고 험담을 하든, 뭐라고 하든,

내 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언제든 우리 당당하게 아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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