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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Sep 13. 2021

요리를 하다 화상을 입었다.

마음의 상처와 닮아있는 화상

닭가슴살과 모듬야채를 올리브유, 토마토소스에 버무려 190도 오븐에 20도 굽는다.

그리고 마지막엔, 치즈를 올려 10분정도 구워낸다.

다이어트 식인 척 하는 우리집 건강식이 완성된다.

바삭하게 구워낸 치아바타 위에 올려먹으면 그 조합이 아주 황홀하다.


평소와 같이 오븐을 열고, 치즈를 올리다 오븐에 손이 닿았다.

순간 "치치직 - " 왠 맛있는 고기가 숯불위 석쇠에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귓전에 스쳐지나가고, 이내 화끈하고 따끔히 아린 감각이 손에 울렸다.

아, 멍청하게 화상을 입었다.


성격이 급해서 화상을 입었다.

"악"하는 소리에 "무슨일이야!"하고 쫓아나온 신랑은 내 손을 차가운 물에 헹궈내고,

얼음팩을 대어 열을 빼주었다.

언제나 내가 아픈 소리를 낼 때면 열일 마다않고 달려와주는 신랑이 있어 참 든든하고 감사하고 고맙다.

(밤에 잘때면 침대에 누워 3초컷으로 잠들고, 어떤경우에도 깨지 않다가도 내가 다리에 쥐가나면 귀신같이 일어나서 주물러주는 사랑꾼이다.)

그러더니 오븐용기를 아주 차분~하고조심히 빼내 치즈를 살포시 얹는게 아닌가.


충.격.

수없이 오븐요리를 했지만 오븐 용기를 뺼 생각은 안하고

매번 그 뜨거운 오븐 안으로 겁도없이 맨손을 집어 넣었던 나다. 

재료를 추가할때도, 섞을때도, 뒤집을때도, 장갑도 안끼고 집어넣었다.

이건 안전불감증인가 성격이 급해서인가 머리가 그쪽으론 발달을 안해서인가...

아 우리신랑 똑똑하다...차분하다...

둘중에 한명이라도 그 방법을 알아서 다행이다 싶게 감사하고

그 생각을 못했던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픈것도 모르고 깔깔 웃었다.

어릴때 엄마가 '헛똑똑이에요~'하고 말하던게 다 이런건가 싶다.

그 수없이 덤벙대는 모습도 괜찮다고 사랑해주는 신랑에게 또한번 감사할 일이다.


몇일동안 신랑은 아주 두껍게 내 손 위에 화상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붙여주었다.

그 정성 끝에 물집하나 없이 조금씩 아물어가고있다. 

근데 이 화상이라는 녀석, 참 오래도록 따끔히 아프고 낫질 않는다.

남편이 말하길 "계속해서, 다 아물 때 까지 연고를 두껍게 발라줘야 흉터가 안남는대~"란다.


1. 화상이 마음의 상처와 참 많이 닮았구나, 쌍둥이같네 싶었다.

마음의 상처도 계속해서, 아물 때 까지,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을 주어야한다.

그럼에도 흉터가 남아 몇십년이고 죽는날까지 안고가야 할 상처도 있겠지만,

나 자신과 내 옆에 있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보듬어준다면 

나아지지 못할 상처와 아픔이 이 세상에 있으랴 - 라고 희망하고싶다.


2. '부엌에서 입은 상처'라고 하니 우리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나의 외갓집 식구들은 화통하신 외할머니의 소리통을 물려받아 목소리도 크고, 발성도 좋고, 그래서 노래도 잘한다. 그리고... 놀랐거나 다쳤을 때 누구보다 크게 소리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엄마가 30년 넘는 세월동안 주방에서 수천수만가지 요리를 하면서 몇번이고 다쳐 소리를 질렀다.

나의 외마디 '악'과는 달리 "으으아아악! 쓰으으읍 으아아~" 소리가 크고 길기까지하다.

그 때마다 우리 아빠는 일하느라 대부분 집에 없어 달려와주지 못했고,

집에 있다 하더라도 TV를 보면서 허허 거리느라고 엄마가 아프든 말든 큰 관심도 없었다.

어린 두 딸도 어찌 처치할지 몰랐고, 하도 자주 엄마가 아프다고 소리치다 조용해지는 터라

적응해서인지 달려가보지않고 '조금 다쳤겠지~ 그러다말겠지~'하고 스윽 왔다가 약한번 발라주곤 끝이었다.

아무리 작은 상처도 약 한번 바른다고 씻은듯이 아물지 않았을텐데,

그 상처가 나을 때 까지 엄마는 몇번이고 스스로 상처를 돌보아야 했을 것이다.

갑자기 그 시간들이 엄마에게 외로웠겠다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그 아프다는 외침이, 사실은 그 아픔의 크기보다 가족들이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그런 외마디 외침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참 철없는 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얼마전에 엄마랑 크게 다투었다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노라- 하고 연락하기가 참 껄끄럽다.

어느날엔간 오늘을 후회할 날이 있을걸 알면서도 참 쉽지않다.

그래도 결국엔 언제나 그랫듯, 아무일 없었던 듯이 다시 엄마랑 투닥거리며 이야기하겠지.


오늘 잠들기 전에는 화상연고 위에 예쁜 카카오프렌즈 밴드를 하나 붙였다.

네일아트하나 하지않고 바짝깎은 손톱, 오동통한 손등위에 붙인 밴드를 보니

화상을 입었다기보다 예쁜 장식품 하나 얹어놓은듯 기분이 좋다.


 아, 그리고 다음에 오븐요리를 할 땐 꼭 손을 넣는게 아니라 그릇을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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