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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Sep 14. 2021

20.[난임일기]나를 낳은 엄마를 원망하곤했다.

아이러니하게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싶다.

삶이 힘들때마다 나를 낳은 부모님을 자주 원망하곤 했다.


엄마도, 아빠도 원망스러웠는데

아빠는 무서워서 만만한 엄마한테 자주 원망섞인 말로 마음에 상처를 줬다.

변명하자면, 아빠는 어차피 돈벌러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니까 나를 케어할 수 없을거고,

집에 있는 엄마가 나를 케어해주리라는 기대가 커서였다.



우리엄마는 본인의 삶만으로도 힘든 사람이었다.


나를 케어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나의 불안인자는 우리 엄마의 불안의 유전인가 싶을 정도로, 엄마는 불안해했다.

아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이 힘들다며 경제적으로 불안했고,

아빠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무서워서 불안했고,

아빠가 바람이난게 아닐까, 아빠가 떠나는게 아닐까 부부관계에서 불안했다.



내겐 언제나 정서적 지지가 필요했는데, 그게 없었다.


나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알림장 확인도 안하고, 숙제나 준비물도 챙기지 않을때,

나는 엄마가 확인해주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챙기는 아이였다.

우리엄마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 알아서 한다.'라며

자랑반, 무덤덤한 반 의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참 밝고 씩씩한 아이인줄만 알았는데, 내게도 힘든 시간은 찾아왔다.

어린시절 멀리 이사를 다닐때면 언제나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새로 만나 적응해야했다.

그런데, 지방으로 이사갈땐 서울말쓴다고 따돌리려했고,

서울로 이사왔을 땐 사투리 쓴다고 맨날 놀리려했다.

'아~ 짖어라~ 어차피 난 친구가 생길거다~' 무시하며 살았고,

그나마도 사람을 잘 사귀는 성향이라 결국엔 따돌림을 시도하던 애들까지 미안하다며 친구하자고 했지만

그 과정은 내게 참 힘든 시간이었다. 상처를 안받았다면 아주 거짓말이다.

밤마다 친구관계로 힘들어 울던 내게, 엄마는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지 못했다.

본인도 옮겨와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꾸려야 했기에, 본인의 삶을 더 크게 바라보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특목고를 갈까, 예고를 가서 피아노를 더 배워볼까, 특성화고는 어떨까?'

'대학 네임벨류가 중요할까? 전공이 중요할까? 이 전공을 하면 가지게 되는 직업은 뭘까? 나한테 잘 맞을까?'

이러한 고민의 회오리 속에 휩쓸리다 파묻혀버리는 기분이었다.

막막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엄마아빠는 서로 크게 다투었다. 집안에서 고성이 오갔고 '이혼'이란 단어까지 나왔었다.

음, 내 고민따위는 털어놓을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아침에 아빠와 다투고나서는 방에 들어가 울기만 했고,

아빠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툴툴거리며 집에선 한마디도 안하고 엄마밥만 얻어먹고는 우리를 본체만체 했다.


꼭 2-3달이면 서로 화해를 해서 다행이었다.

사이가 좋아지고나면 조심스레 내 진로에 대해 부모님께 묻곤 했는데,

그 때 마다 엄마아빠는 TV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화가나서, 짜증을 내고 나서야 '아, 왜 짜증이니?' 라는 얼굴을 하고서 나를 쳐다봐주었다.

그리곤 도리어 내가 화, 짜증을 낸다고 혼을 내거나

"나도 니가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몰라. 네인생인데 네가 더 잘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알다시피 너는 이과고, 엄마아빠는 문과출신이라 그쪽에는 문외한이야. 나도 잘 몰라. 알아서 좀 해봐."

라고 이야기했다.


아니, 내가 뒷돈을 쓰고 빽을 써서 어딘가 넣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미 내가 이런저런 장단점을 비교해서 후보군을 정했고, 그 중에 갈등이 되니 함께 고민해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알아서 하라는 말로 돌아오다니 답답하고 어이가 없어서 매번 화가 치밀었다.



그럴거면 나를 왜 낳았어?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엄마한테는 상관없는거야?


고3떄, 진로를 앞두고는 크게 다투면서 하루는 내가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엄마는 버럭 화를냈다.


"딸이 잘 안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있니. 얘는 참 이상한 소리를 잘도 한다.

 그리고 너는 참 감사한줄을 몰라. 네가 지금 부족한게 뭐가있니?

 낳아줘, 키워줘, 밥줘, 안전하게 집에서 잠재워줘, 옷사줘, 학비대줘, 학원비대줘, 얼마나 풍족해?

 참 사람 욕심 끝이 없다고 감사한줄을 모르고 어디서 부모탓이야?

 네 인생은 네가 사는거지 부모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는거야."


와, 그당시엔 너무 화가났다. 엄마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니 내 마음속에는

"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못된 아이야." 라는 자존감을 깎아먹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감사할 줄 모른다'는 그 이야기를 극복하기위해 평생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도.



우리 딸 많이 힘들었구나, 한마디면 좋았을텐데


 우리딸이 멀리 이사와서 친구 사귀느라 힘들었구나,

진로 고민하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그랬구나.

엄마가 큰 도움이 못되어주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이것만은 기억하렴.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엄마아빠는 너를 정말 사랑하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네가 잘 살아갈 수 있게 진심으로 응원해줄거란다.

그러니 걱정말고 앞으로 걸어나가렴. 모든지 네가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해봐도 괜찮단다.

때로 겁이 나면 멈추고 집으로 잠시 돌아와 쉬렴.

엄마아빠가 언제나 너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게.

잠시 쉬고 머물 곳이 있는데 뭐가 그리 문제가 되겠니?

겁먹지 말렴, 세상이 무섭지만 꼭 그렇지도 않단다.

어디든 따뜻함이 존재하기 마련이야.

만약 없다면, 네가 그곳에 가서 따뜻함으로 존재하면 된단다.


이렇게 말해주었다면, 내가 30대가 넘은 지금껏 느끼고 있는 불안이 조금은 괜찮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에라도, 내가 내 스스로, 나에게 그 말을 해줘야겠다.

'괜찮아. 네가 어떤 길을 가고 어떤 평판을 받던, 너는 참 소중한 사람이야. 지금도 충분해.'



나를 낳은 엄마를 원망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아이를 낳고싶어한다.


나같은 딸이 나온다면 '엄마는 이렇게 힘든 세상에 나를 왜 낳았어?'라고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처럼 아이가 힘들어할 때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우리 부부는 엄마아빠보다 더 안싸우고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리라.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걸 깨닫개 해주리라.

그런 결심들을 하고, 실제 삶으로 그려내보고자 하는 욕심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엄마랑은 다를거야.'라는 알량한 자만심도 작용한 것 같다.

나와 신랑은 잘해낼거라는 믿음이다.


우리도 그리 완벽한 부모가 될 순 없겠지만,

무조건적인 사랑만큼은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낳은 엄마를 원망함에도 아이를 낳아 가정을 단란히 꾸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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