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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0. 2021

3.[난임일기]난임부부에게 참 잔인한 한국 사회, 사람

'아이는 언제쯤? 젊을 때 낳는게 애한테도 좋아~'

O씨 결혼했다 그랬지? 몇년이나 됐어? 벌써 그렇게 됐어? 아기는~? 언제 낳아?

아직도 아기가 없다고? 젊었을 때 낳아서 키워야지. 나이들고 낳아 키우면 애도 엄마도 고생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나 닮은 아이 하나 쯤은 꼭 낳아야 어른이 되겠더라구요


제발 그만 물어보세요. 힘들어요.

나는 오지랖이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대학시절 나의 꿈은 바보같게도, 아이한명당 육아휴직이 2-3년간 충분히 보장되어있고, 눈치보지않고 쓸 수 있으며, 복직 및 승진에 대한 불이익이 없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어린시절 아버지가 외벌이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엄마는 언제나 '돈이 없다.'라는 말과 내 학원비를 낼 떄면 '아이고, 이 돈덩어리.'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어린 나는 너무 싫었다. 그리고 언제나 미디어에서는 '경력단절 여성', '육아휴직 복직 후 퇴사권고 당해', '임신 후 부당해고' 라는 말을 떠들어댔고, 나름 공부할만큼 한 21세기 신 여성으로서 출산과 육아가 나의 커리어를 잃게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능력이 있는 여성이자 엄마이자 아내가 되어서 경제적으로 걱정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그래서 처음 취직을 준비할 때, 육아에 대한 복지가 준비되지 않은 사기업은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하나 둘 삼성, LG로 인턴쉽을 떠날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불안했지만 전공을 팠고, 자격증을 따 나갔다. 그리고, 꼭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는 공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공기업이 그렇게 꼰대들과 오지라퍼들이 모인 소굴인지 몰랐다.


그렇다. 공기업은 온갖 세상에 남의 인생 참견 못해 심심해 죽은 귀신이 달라붙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 50대 이상의 팀장들은 하루종일 책상위에 발바닥을 올려놓거나 하루 반나절 이상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는데 시간을 할애하며

'심심한데~ 오늘의 타겟은 누구로 하지?'따위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혼부부라는 먹잇감은 언제나 맛있게 물어뜯기 좋은 소재다.


왜, 남편이 밤에 잘 안해줘?

라고 말하는 미친 사람들도 있다...

결혼한지 1년차 까지는 '아이'에 대한 질문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요즘의 신혼부부는 야식을 어떤 메뉴를 먹는지, 술은 같이 마시는지,어떤 주종을 좋아하는지, 남편의 주량은 어떻게 되는지, 주말이면 어디에 놀러를 다니는지, 그 동네 맛집은 어떻게 되는지, 집안일은 잘 분배해서 하고 있는지, 명절에 음식을 얼마나 하는지, 같은 귀찮긴 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쁠만한 질문들은 아니었기에 흔쾌히 답하며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좋은 소식 없어..? 아기는 언제 낳을 생각이야?

하다 못해 청소하시는 여사님들까지 한숟가락 뜬다. 눈을 희한하게(무슨 단어로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아시리라) 뜨시면서 좋은 소식 없는지 엉덩이를 툭 치면서 물어본다. 난임인지 몰랐을 떄 까지는 '네~ 가져야죠~ 그럼요~ 노력하고 있어요~.' 라고 그냥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온갖 종류의 잔소리들(여자가 몸이 따뜻해야해, 남자는 차가워야하고. 신랑 소고기랑 장어좀 사먹여)같은

잔소리들은 그냥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물소리에 떠내려가라고 상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로 그런 질문들이 너무 가슴아프고, 예민해졌다.

안그래도 아픈 가슴을 창을 넣어 후벼 파는 듯한 기분이었다. 목 끝까지 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하고 차오르는 느낌이었고,머리는 불에 다군 징으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하고 뜨거운 기분이었다. 

슬픔과 화였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난임부부라는 사실에 또 한번 슬퍼졌고, 대체 니가 뭔데 그런거에 간섭을 하는지 화가났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었다.

"그만 좀 하세요. 아니 내가 애를 낳던 말던 당신이 무슨상관이세요? 뭐 하루라도 애 봐주시기라도 할거에요? 용돈이라도 꼬박꼬박 주시게요? 난임이라는데 시술비용이라도 주실거에요? 아님 본인이 삼신할머니라도 되나보죠? 점지해주실거에요? 아, 난임시술 받는데 여자가 많이 아프고 힘들고, 남자도 수술하면 그만큼 아프고, 마음아픈건 또 말도 못해요. 그 아픔 대신 느껴주시려구요? 아니면 애 낳고 넓은 집으로 이사갈 수 있게 청약이라도 되게 도와주시려나? 집을 주시려나? 그리고 어차피 애 낳고나면 사진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닮았니 안닮았니 눈이 작니 코가 낮니 하면서 외모 품평부터 하실거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발 알아서 할테니까 남의 인생에 훈수좀 그만 두세요."


묻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힘들다.

제발 아이의 유무를 묻지 말아달라.


누가 아이 계획있냐, 왜 안낳고있냐, 그리 굳이 묻지 않아도, 난임부부들은 충분히 힘들다.

내가 살고있는 곳은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난임 사실을 알게된 이후부터는 바깥에 나가서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가끔 마음이 힘들다.

햇빛가리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더운날 유모차를 끌고 걷느라 지친 엄마의 발걸음도 그저 부럽다.

기운이 넘치게 친구들과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내 아이도 나중에 저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울컥하고, 교복입은 중 고등학생들을 보면 내 아이도 저렇게 훌쩍 커서 중고등학생이 되어 '엄마, 나 공부하기 너무 힘들어.' 라거나 '나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대학도 가기싫은데 어떡해?'같은 질문들을 하겠지. 단란하게 아이의 양쪽에서 아이의 한 손씩을 잡고 행복한 웃음을 띄며 걸어가는 가족을 볼 때면 가장 마음이 미어진다. 우리도 저렇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어줄 수 있는데, 아이가 언제쯤 와줄까. 어디쯤 와있니. 하고 . 가슴이 아프다.

눈물샘은 파업도 안하는지 하루라도 마를 새가 없다.



난임부부에게 정답이 정해진 한국식 인생시계는

너무도 가혹하다.


태어나고, 학교가고, 대학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낳고, 아이도 똑같이 돌고 또 돌고...

"20~21살이면 대학에 가야하고, 모름지기 26살 전에는 취업을 해야하고, 여자나이 30전에는 더 늙기전에 예쁠 때 결혼을 해야하고, 노산은 위험하니 32살 전에는 아이를 낳는것이 좋다."

취업하고 결혼하는 미션까지는 어찌어찌 아둥바둥 거리면서 잘 해왔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관문 앞에서 이렇게 한 번 가로막힘이 있을줄 그 누가 알았던가.

우리나라는 이렇게 정답 밖으로 가는 자들에게는 아주 가혹하게, 가차없는 평가를 둔다.

'부부 관계가 없나봐. 어디 문제있나봐~' 라는 상처가 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그렇게 누군가에게 아무렇지않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당신의 정신세계가 문제가 많은거 같아.'

아니 문제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당신 그거 병이야. 병.라고 말해주고싶다.

내가 원해서 시계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간절히 시계의 속도에 맞춰 걷고자 했다.

이미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아이를 낳는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돈과 마음을 열과 성의를 다해 투입하고있다.

우리를 닮은 예쁜 아이를 만나기 위해,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다. 곧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귀하게 얻은 아이를 위해 우리는 충분한 사랑을 부어줄 것이다.

그러니, 이미 힘든 난임부부들에게, 마음이라도 편하게, 그냥 가만히 기다려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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