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빛초록 Aug 20. 2021

4.[난임일기] 무정자증

말도 안되는 믿고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산부인과 가서 초음파 검진도 여러번 받고, 날짜도 받았는데 아기를 만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걱정때문이었을까, 다시 또 월경주기가 제 맘대로 들뛰었다.


아무래도 배란이 불규칙하다 싶어 클로미펜정을 처방받아 배란 유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배란유도제를 처방받으려면 생리 2일째 날에 방문해야하는데, 주기가 들쭉날쭉한 나로서는 정확한 일정을 가늠하기가 어려워 병원예약도 불가능했다. 그냥, 생리가 시작되는 날 여는 산부인과를 수소문해서 가야하는 것이다. 하필이면 퇴근시간 임박한 5시에 생리가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이번달을 또 건너뛰면, 하염없이 그 다음 주기를 기다려야 하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회사에 있었지만, 몸이 닳아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았고, 겨우 회사 앞의 산부인과 한 곳을 찾았다.


'지금 방문해도 진료 및 처방이 가능한가요?'

'무슨 일 때문이시죠?'

'임신 준비 때문에 배란유도제 처방을 받고싶어서요.'

'아, 6시 전에만 오시면 되요. 오늘은 남자 선생님만 계시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갈 수만 있으면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회사 앞에서 뛰면 5분거리에 있었기에 6시 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예전엔 산부인과 남자선생님을 만날때면, 나의 세세한 월경 상태와 신랑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료목적 차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게 참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런데 지금은 임신하는 것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그제발 어떻게든 임신 가능성을 높여 달라는 마음만 가득해서 남자 선생님이 불편한지, 여자선생님이 까칠한지, 그런것 따위는 내게 상관없었다. 그냥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능력만 있으면 됐다.


그렇게 클로미펜을 처방받아 약국에서 구입해 오던 날,

사실 나는 많이 설레었다.

다음 주기에 이 약만 먹으면, 아기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많이 설레었다.

나의 불규칙한 월경주기를 이 조그마한 알약이 도움을 줘서, 임신을 가능하게 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 다음 달에는, 월경기 찾아오지 조차 않았다. 무려 60일을 건너뛰었다.

마음이 힘들고, 조급해졌다.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일정이 뒤로 밀리는게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나 8~9월이면 지역 전보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 전에 어떻게든 임신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전에 임신을 하려면 이제 겨우 2달, 내 주기가 정확히 찾아와 준다는 가정 하에 단 2번의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꼭 되어야한다.


라는 마음이 너무 가득해, 남편도 검사를 받기로 했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앞둔 7월 2일 금요일, 그가 어렵사리 동네에 있는 비뇨기과에서 정액검사를 받고 왔다. 나는 재택근무였기에, 별일있겠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의 표정은 어둡게 굳어있었다.


'자기야 ... 나 무정자증이래.'

'......'


믿고싶지 않았다. 신랑도 믿고싶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너무도 ... 너무도 ... 하늘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편안하게 기다리던 마음에 갑자기 하늘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가슴엔 돌덩어리가 내려앉는 듯 했으며

눈 앞의 초점은 멀리 사라지고 희뿌옇게 흩어만졌다. 하필이면, 그날 결혼기념일을 앞둔 금요일을 장식하기 위해 그동안 가보고싶었던 근사한 레스토랑도 예약해뒀는데, 오랜만에 예쁘게 화장하고 레이스가 가득 달린 원피스도 입고 그를 기다렸는데, 근사한 저녁식사 전에 이런 소식을 듣게 될줄은 몰랐다.


머리 속에서는 남편을 다독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그릇이 좁아서, 내 감정이, 나의 슬픔과 막막함이 우선이 되고 말았다.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너무 막막해서, 믿어지지않아서, 땅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몇달동안 가고싶은 레스토랑에는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굳은 표정으로 집을 나섰는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 안쓰러웠다가, 미워졌다가, 하는 마음이 계속 뒤바뀌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근사한 레스토랑의 음식의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그저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평소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도 비싸다며 시켜먹지도 않는 고급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그 맛있게 구워진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먹어도, 그런 사치를 부려도, 그날은 행복하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희망이 있을까. 괜찮을까.

만약에, 희망이 없다면, 나는 이 사람을 붙잡고 둘이서 몇십년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갑작스레 일순간에 찾아오니, 혼란스러웠다.

단숨에 '그럴 수 있다.'라는 대답을 신랑에게 해주지 못함에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우리를 닮은 아이가 너무 간절했다.

지금 이 레스토랑은 노 키즈 존이라 올 수 없을 테지만, 이런 근사한 식당따위 내 인생에 두번 다시 없어도 상관없으니, 우리를 닮은 아이와 집에서 대충 간장계란밥이나 먹어도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가득했다. 그 날을 떠올려보면, 내 감정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내 이야기만 쏟아냈다.

나는 육아휴직을 길게 하고싶어서 공기업에 왔는데, 적성도 안맞는데, 그 장점을 보고 참았어.

그런데 아이를 못낳으면 어떻게 하지? 나는 그럼 대체 뭘 위해서 이곳에 와서 참아내면서 일을 한거야?

라는 말들을 쏟아내며 신랑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는, 그에게는, 내가 아이만 있다면 당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으로 와닿아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날은 내가 너무 속좁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어떻더라도, '당신이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말을 해줘야 했다.

가장 속상하고 가장 놀란것은 그일테니, 차분히 안아주어야했다.

못된 아내였다.

그릇이 좁은 아내였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더 큰 서울의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국내 탑3인 병원 중 가장 인간적이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설명을 해주시며 의학적 능력도 뛰어나시다는 강남 차 병원으로 다음 검진예약을 잡았다.

그날은 내가 참 속좁고 매몰찬 바보같고 이기적인 아내였지만


      다시한번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예요.

      당신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어요.'

      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3.[난임일기]난임부부에게 참 잔인한 한국 사회,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