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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0. 2021

5.[난임일기]신랑, 종합검진 받던 날

별 일 아니길 바래요.


강남 차 병원 종합검진, 별 일 아니기를 바래요.


가벼운 일일거라 여겼던, 서울 데이트 날

21년 7월 5일, 함께 연차를 내고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정밀검진을 받으러 향했다.

별일 없을거라, 생각하며 오랜만의 서울 데이트다! 라고 신나서는 병원 검진이 끝나고

어느 맛집에 가야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신논현역에서 내려 9호선을 타고 언주역, 강남 차 병원 앞에 내렸다.

생각보다 낮고 허름한 오래된 외관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코로나로 인한 문진표 작성과 체온측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인해, 보호자는 출입할 수 없다고 걸려있어 '혹시나 함께 가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긴장감에 머리가 삐쭉 - 서는 듯 했다.


층고가 낮고, 몇개 안되는 앉을 의자마저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병원이었다.

90년대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병원의 느낌이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난임병원에 사람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을줄이야...

모두가 근심 걱정으로 회색빛의 어두운 표정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밝은 분홍빛 친절마저 어두움이 삼켜버린 분위기였다.


혼자 온 환자며, 부부가 함께 온 환자며,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거나 멍하니 하늘만 볼 뿐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모두가 마음의 상처와 답답함을 아무것도 하지않음으로써 잠시 눌러보려 노력하는 듯 했다.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내분이 대신 오셔서 검진결과를 문의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남편분은 우리 신랑보다 10살이나 많은 분이었다. 아내분들도 대부분 30대 중, 후반 ~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어렸는데, 분명 어리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행복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내가 가장 어린데, 난임병원에 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나는 아직 난임 병원에 올 나이가 아니야. 아직 어리고 건강해.'라는 알량한 자만심이

내 안에 있었다.



종합검진, 잘 받고 와요.


조금 후, 남편은 정액검사, 소변검사, 유전자(염색체)검사, 혈액검사, 초음파검사 등을 하러 떠났다.

앉아서 '별일 없게 해주세요. 제발요.'하고 기복신앙을 부려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나란 인간은 평소엔 하나님을 찾지도 않더니 꼭 이렇게 힘들때면 하나님을 찾아대니,

하나님께 나는 소시오패스로 느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창피했다.


옆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혼자 앉아있는 다른 남자 환자들을  보니 서울의 큰 전문병원에

신랑 혼자서 검사하러 왔으면 우리 신랑 마음이

참 외롭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차를 내고서 함께 온게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아내분들이 신랑 검사할 때 혼자 보내지 말고 같이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부부 서로가 많은 힘이 되고 의지가 될거예요)


결과는 3주 뒤인 7월 28일에 나온다고 했다. 3주나 걸린다니... 기다리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아마 대부분이 폐쇄성이라는데, 우리 신랑 아직어린데,

무슨 비폐쇄성이겠어~ 괜찮을거야~

어디 정관에 염증이 생겼거나 막혀서, 아니면 정관이 약해서,

역행성사정으로 정자가 거꾸로 갔을거야~

라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래서 3주라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난임부부지만, 오랜만의 서울 데이트는 행복하게


연애할 때 자주가던 신사동 가로수길, 결혼준비할 때 자주가던 압구정 나들이.

먼저, 식사를 하러 압구정 '대막'에 갔다


손바닥만한 후토마끼(참치회와 새우튀김, 계란말이, 야채 등을 김밥처럼 크게 말아주는 음식)과 바질소바(소고기, 바질페스토, 수란, 루꼴라를 올린 메밀국수)가 유명하다고 동생이 소개시켜줬던 맛집이다.

우리같은 직장인들이 평일 점심에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압구정 맛집에 가다니 ! 엄청 맛있을거란 기대감에 설렜다.

잠시 기다리는 불편한 대기석조차 오랜만이어서인지 신선하게만 느껴졌다.


런치2인세트(후토마끼, 바질소바, 계란샌드위치)를 해치우고 나와서 노티드 도넛으로 향했다.

크림도넛이 유명한,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웨이팅이 어마어마한 곳이다.

그래도 평일 점심에 갔더니 약간은 한산해서 금방 주문할 수 있었다.

난임 검진을 받고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구름같이 폭신한 맛이었다.

4개를 포장해다가 따릉이를 타고 신사동으로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함께 서울 자전거 데이트라니, 가슴이 벅찼다.

연애시절의 추억이 머리속에 방울방울 떠올랐다.

우리 신랑은 따릉이를 탈 때면 언제나 내 뒤에서 나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뒤에서 위험한게 오는지, 다른 사람이 오는지, 다른 자전거가 오는지 보면서 큰소리로

 '조심해 ~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제 갔다~'

말해주는데, 그럴때마다 귀중하게 보호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자전거 데이트가 더 좋다.


심지어는 앞에 있는건 나인데, 앞에 장애물이 있다거나, 급격한 커브길이거나,

튀어나온 곳이 있을 때도 한참 뒤에서 보고는


'앞에 커브길이에요~ 속도 줄이세요~ 앞에 전봇대 조심~ 앞에 풀숲 조심~'하고

자상하게 알려준다.


그에게는 나를 지켜야한다는 레이더가 엄청 멀리, 넓게 분포해 있음이 확실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신사동 잠원 한강공원을 내달렸다.

햇볕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한강이, '다 괜찮아. 다 잘될거야.'

라고 말하는 듯 해 위로가 되었다.


시원하게 불어와 땀을 식혀주는 바람은 답답하게 막혀있던 속을

어루만지고 잠시나마 뻥 뚫어주는 듯 했다.

자전거를 탄다는건,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세상 걱정들을 잠시 잊게 하는 것 같았다.

행복했다.

으로 오는길에, 계속해서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별 일 아니게 해주세요. 가벼운 치료로 해결할 수 있게 해주세요.

폐쇄성 무정자증이게 해주세요.


아니더라도 그렇게 결과좀 바꿔주세요.

저와 제 신랑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세 가족이 함께 교회도 가고

하나님 안에서 예쁜 마음으로 세상을 따스하게 만드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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