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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0. 2021

6.[난임일기]신랑 정밀 검사 결과 듣는 날

비폐쇄성 무정자증이 의심됩니다.

21년 7월 28일 수요일은 강남차병원으로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3주간의 오랜 기다림으로 지쳤지만, 오늘은 희망적인 결과를 듣고

순탄하게 임신 준비의 길에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남편에게도 '나 시험관 하는거, 아픈거 하나도 안무섭고 걱정안돼.

우리 아이를 낳을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감당할 자신 있어.'

그리고 '오빠때문에 시험관하게 되었다는 원망도 하나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우리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걱정마, 라고 말했다.

 ( 생각해보니 이 말이 신랑에게는 오히려 더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미안하다.)


그날 아침은 뭔가 이상했다.

아침 10시까지 강남의 병원에 도착해야 했는데, 10시 전에 도착할 수 있는 버스를

눈 앞에서 놓친것이다.

평소에도 둘다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야 뛰어나오긴 했지만, 언제나 전속력으로 달려서

 버스를 놓친적이 없었는데,

하필 그날은, 둘다 뛰어가는 와중에 지나가는 버스를 봐야했다.


병원에는 결국 늦게 도착하겠구나, 속상한 마음으로 20여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탔다.

그런데, 내 핸드폰으로 교통카드요금 결재가 안되는 것이다. 알고보니 얼마전 SK알뜰폰으로 교체했던게 문제였다.

SK알뜰폰은 LGU+계열 기기에서 교통카드 NFC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실물 카드 한장이라도 가져왔더라면 그냥 카드로 찍었으면 되었을텐데,

그날따라 둘다 카드도 한장 챙기지 않았다.

결국엔 기사님께 말씀드려서 신랑의 핸드폰으로 두명분의 승차운임을 지불했는데,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이게 액땜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내 안좋은 결과를 가져와주려고 자꾸만 우리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우리는 이렇게 운이 없고 바보같이 물건을 다 안챙겨나오는 사람들이 아닌데,

그날 따라 특히 그랬다.


지하철을 탈 때도 문제였다. 버스는 2인 운임을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지불할 수 있지만,

지하철은 불가능하기에

일회용교통권을 발행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에게 현금이 1원도 없었다는 것...

삼성페이는 지하철 이용권 결재가 불가능 하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결국 ATM기에서 돈을 5만원 뽑아서, 내내 현금으로 지하철 일회용 교통권을 발급해 타고,

보증금을 반납받으며 다녔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그래도, 물건을 가져오지 않아 많이 힘든상황에서도 함께 강남까지

무사히 도착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결국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아왔기에 되돌아보면 모든게 힘들게만 느껴진다.)


먼저 강남 차병원 본원 비뇨기과에 초음파검진을 받으러 향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 2분이 검진을 받기 위해 앉아계셨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엄마를 따라나선 사춘기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접수데스크 앞에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초음파는 별달리 아프지 않으니, '잘 다녀와.'라는 말로 신랑을 진료실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며 기도했다.

'초음파로 보니, 막혀있네요. 이것만 뚫으시면 되겠어요.'

라는 말을 듣고 웃으면서 나오기를 기도했다.

기도 덕분이었을까, 초음파 검진을 마치고 나오는 신랑의 표정이 다소 밝았다.

결과가 좋았을까? 너무 궁금했지만, 혹여나 안좋았을까봐 괜한 상처를 주고싶지 않아 먼저 말해줄 때 까지 기다렸다.

그때, 신랑의 입에서 기분좋은 말이 나왔다.

'별로 심각한일이 아닐수도 있겠어요, 정계정맥류 소견이 보이네요. 이것 때문에 안나왔던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라고

의사선생님이 그러셨단다.


조금은 걱정하던 마음이 내려갔다. 아니 사실 거의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 남편 아직 나이도 젊고 건강한데, 무슨 큰일이었겠어,

 당연히 별 일 아니었을건데, 괜히 걱정했네.'

행복한 마음으로 분원의 교수님께 검진결과를 들으러 향했다.


이상했다. 분명히 초음파를 봐주신 교수님께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거라 했는데,

설명을 앞둔 교수님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진중하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검사결과를 하나씩 보여주셨다.


'염색체 문제는 없어요. 예를들어 성염색체가 하나 더 있는 XXXY같은 클라인펠터 증후군

같은 경우에는 정말 힘들거든요.'

희망적이었다.

'유전적인 문제에 대한 소견도 전혀 없네요. 건강합니다.'

다시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여기 보시면 호르몬 수치가 조금 안좋아요. FSH랑 LH인데, 정소자극호르몬과

성선자극 호르몬이라고 하죠.

 정소에서 정자를 잘 만들고 있다면, FSH와 LH의 수치가 정상범위 내에 있어야하는데,

 수치가 조금 높다는건, 지금 정소에서 정자를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다행인건, FSH와 LH가 너무 낮을땐 뇌하수체쪽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는 건데,

 호르몬 자체는 과분비되고 있으니 뇌하수체쪽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혼란스럽고 갑자기 슬퍼졌다.

뇌하수체쪽에 문제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좋아해야하는건지,

정소와 고환 자체의 문제가 의심된다고 하니 심각해야하는건지.

머리를 굴리고 굴려보았는데 갑자기, 아, 비폐쇄성을 말씀하시는건가,

하는 마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또, 평균보다 고환크기가 좀 작아요.'

그래, 이 말은 좋지않은 상황이란걸 말하는가보다.


갑자기 종이를 꺼내시더니 쓱쓱 무언갈 그리며 설명하셨다.

무정자증에는 비폐쇄성과 폐쇄성이 있는데, 이미 아시겠지만 폐쇄성은 고환자체의 정자 생성능력에는 문제가 없어서 정관에 일시적으로 일어난 염증을 치료해주거나, 정관이 끊어진 경우면 봉합술을 해주면 자연임신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정관이 없다면 TESE수술로 고환에서 정자를 꺼내서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정자는 아주 잘 나오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하지만 지금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비폐쇄성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FSH와 LH가 높고 고환크기가 작은게 좀 걸리네요.

이 경우에는 미세다중(micro-tese)수술을 해서 고환을 절개하여 안에 있는 정자나, 생식세포를 찾은다음에 배양을 해서 시험관시술을 시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뭐, 죽음의 위기가 올 만큼 심각하고 어려운 수술은 아니지만, 고환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 신중할 필요는 있어요. 정자를 찾을 확률은 보통 10~20%가 됩니다. 지금 당장 수술을 결정하지 않으셔도 되니, 부부가 함께 상의하시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셨을 때 말씀주시면 수술을 예약해드리겠습니다.


그 좁은 진찰실 안에서 겨우 10분남짓 지났을까,

우린 분명 본원에서 손을잡고 역시 별일 아니라며 신이나서 나왔는데,

겨우 10분사이에 , 숨이 탁 막혀왔다. 어지러웠다.

거짓말이라고, 이상한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싶었다.

믿고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신랑은 상의할 필요가 없다는 듯 내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그럼 수술해야죠. 날짜는 언제가 가능한가요?'하고 물었다.

그 말을 하는 신랑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마음이 아팠다.

침착하게 다음 단계를 묻는 그의 마음 속 깊이까지도 침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쩜 나보다도 그 순간 그는 더 약해졌고 아팠으나 티내고 싶지않아 씩씩한 척 했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의 마음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난다.


나는 물었다.

'교수님, 수술 전에 준비하면 좋을 것, 준비해야할 건 따로 없을까요?'

'사실 이 경우에는, 식단조절이나 영양제 복용, 운동같은 것들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저 술이나 담배, 통상적으로 아주 안좋은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들은 조금 피해주시는게 좋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말을 꺼내서였는지, 아연이 들어간 종합비타민과 클로미펜이라는 호르몬조절제를 40일치 처방해주셨다.


나오는 길에 수술일정을 잡고 왔다.

수술하는 사람은 1박 2일간 입원을 해야하는데, 망할놈의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함께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와봐야 겨우 5분정도 면회하고, 짐만 전해주고 다시 돌아가야할거라고 한다.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큰 병원이기에 방역지침을 강하게 지켜야 한다는건 머리로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전신마취까지하고 무통주사까지 맞는 수술을하는 우리 사랑하는 남편을, 그 차가운 병원 침대방 안에 혼자둬야한다니

병원에다가 나만 좀 예외로 해달라고 땡깡을 부리며 바닥에 누워 꺼이꺼이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신랑은 '괜찮아, 별 수술 아니야. 아파서 하는것도 아니잖아.

안무서워. 어차피 하루만에 퇴원인걸.

자기가 병원오면 병원 시설이 편한것도 아니고 더 힘들거야. 

그냥 집에서 편히 쉬고있어. 나 걱정하지말고.'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래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걱정되고 겁이나진 않았을까.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먹고싶던 햄버거집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 상황에도 밥이라도 잘 챙겨먹어 다행이다 싶었다.

리모델링한 강남역 카카오프렌즈샵에도 놀러가서 스티커도 받아오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 처럼 데이트를 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속의 나는 너무도 슬퍼보였지만, 그날은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몹시 애썼다.

이를 악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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