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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0. 2021

7.[난임일기]난임 진단 후, 우리의 일상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이 흘러간다.


한 달,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난임 진단을 받은 뒤,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루하루는 참으로 잔인하게 길었고, 한달이라는 시간은 훌쩍 뛰어넘었다.

진단 이후 3일간은 내내 눈물에 젖은 얼굴로 일상을 보냈다.

눈물에 불어나 벗겨진 코의 빠알간 각질이 그간의 슬픔을 말해준다.


분명히 해가 쨍하게 밝은 여름이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의 높낮이가 바뀌는 나에게 밝은 여름은 최고의 계절이다.

진단 후의 차이점이라면, 올해의 여름은 최고의 계절이 아니었다.

싱그럽고 밝은 여름같지 않았다. 분명 여름인데, 잿빛 겨울이었다.

잠들기 전이면 걱정과 불안으로 불면증이 찾아왔었고,

잠이들려면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요 몇일은 걱정과 불안이라기 보다는 '잠들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 주된 원인이었기에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 하다.


회사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표정과 말이 사라진 색깔없는 무표정의 사람이 되었다.

슬픈 감정이라기보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채로 일만 하고 있다.

보고서를 쓰면서도 지금 내가 제대로 스토리라인을 잡고 있는건지,

와 같은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었고

보고를 들어가서 지적을 받더라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 그냥 고쳐야지뭐.'라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지금은 지적을 받는 것에 대한 상처와 스트레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쯤이야 뭐, 인생에 큰 일도 아니다. 쥐똥만한 일이다.


한달만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어디 아프냐고,

O대리가 말을 안하니까 사무실 분위기가 상하다며,

감사하게도 걱정을 해주신다. 내가 어두운 분위기를 풍김에도

걱정먼저 해주는 사무실 사람들이 참 고맙다.


어릴적엔 참 눈물이 많아서 회사에서 창피하게 많이 울었다.

나의 약한 감정 따위를 전쟁터같은 회사에서 들어냄은 정말 좋지 않은 일이란 걸 알면서도

나의 눈물샘은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지금 울어야겠다.'며 이내 쏟아지고 말았다.

이번엔 사무실에서 울지 않았다. 울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눈물이 쏟아지려 할 때면 그저 감정을 빼고 다시 일을했다.


괜찮아 보이지 않지만, 괜찮아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울진 않았기에 괜찮아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힘든 프로젝트가 내게 주어지면 지금 당장 이겨낼 힘은 남아있지 않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어차피 잘 될거니까,

시간만 지나면 곧 해결될 것이다.


게임속 캐릭터가 H.P 충전할 시간을 기다리며 안배하고 버티듯이

아주 조금씩 감정을 깎아내면서 버텨내고 있다. 장하다.




머리에 생각이 많고, 불안함으로 힘들때는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내 안에 머물러있는 수많은 감정들과 수많은 말들을 글로 옮겨 덜어낸다.

가슴 속의 무게를 이 곳에 조금씩 덜어내면 조금은 홀가분해진다.

물론, 글을 읽기위해  들어와서 특정 플랫폼에서

 내용은 생각지도 않고 광고성 댓글을 달고 의미도없는

이웃추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상처받는다.


그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신경써줄 의무와 여유따위는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그런식의 마케팅을 펼쳐서 인생에 얼마나 큰

돈을 더 벌고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참으로 정없는 세상이다. 그

래도 옛날 싸이월드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정이 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 정이 뚝 떨어지는 날에는 플랫폼을 옮겨야겠다고 다짐한다.

조금은 더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말들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이 지금 내게는 간절하다.

----→ 그래서, 브런치로 글쓰기 플랫폼을 옮긴 지금은, 조금 더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면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나, 이미 겪었던 분들과도 댓글로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홀로 극복해내기엔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신랑과 나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식단과 운동,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서로의 의지를 북돋으며.

거실 한 복판에 잘될거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한가득 구체적으로 써서

귀여운 스티커로 붙여두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우리의 가정에 왔다는 메시지와

세명의 가족 그림까지 담아두었다.

이렇게 구체화해서 집안 어딘가에 걸어두고, 자주 보면 실현된다고 유튜브에서 봤다.

예전엔 많은 돈을 벌어서 으리으리한 서울에 고층 아파트에 살아야지,

 늙어서도 신랑이랑 손 꼭 붙잡고 서로 안아주며 살아야지,

앞으로 사는 날 동안 해외여행을 더 많이 가서 서로 많은 추억을 쌓고

세상의 신기하고 진귀한것들을 함께 만나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서 걸어둬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만들어두었다.

내 실행력이 오랜만에 올라간 것을 보니 그만큼 내가 지금 간절한가보다.



신랑에게는 건강에 좋다는 음식들을 부지런히 챙겨주고있다.

평소 좋아하던 유제품(치즈, 우유)와 밀가루(피자, 빵, 과자),

단당류(아이스크림, 액상과당이 잔뜩 들어간 음료수와 탄산음료)들을

한달만 참아달라는 부탁을 이렇게 잘 들어주다니, 참 고맙다.

먹을걸 엄청나게 좋아하는 우리 신랑이 그것들을 포기하고 있다니,


함께 노력해주어서 감사하고 고맙다.

토마토와 당근을 데쳐서,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 믹서기에 갈아 끼니마다 챙겨먹고 있다.

부추가 좋다기에 부추를 한다발 사서 부추무침을 해주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무국도 한솥 끓였다.(일주일 내내 소고기 무국만 먹을만큼 끓여버려서 좀 미안하다 ㅠ ㅠ 내 큰 손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아연이 강화된 종합비타민과 클로미펜 호르몬제도 아침마다 꾸준히 챙겨먹고,

저녁이면 함께 엽산과 유산균을 꿀꺽 삼킨다.

계란이 좋다기에 이 참에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비싼 등급의 계란도 사먹어볼 참이다.

수술 전까지 야채도 더 고루 챙겨주고, 전을 좋아하는 신랑을 위해 부추오징어파전도 해줘야겠다.

몇일 전엔 통풍과 열을 내리기에 좋다는 풍기인견 트렁크 속옷도 사주었다.

드로즈보다 훨씬 건강에 좋다던데, 너무 아저씨 같다는 이유로

트렁크를 피했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차피 안보이는 속옷이니까 건강을 위해 트렁크를 입으심을 추천드린다.)

신랑은 내가 부탁한대로 냉찜질도 엄청 열심히 해주고 있어 고맙다.

함께 일주일에 3번정도 필라테스를 가고, 2~3일 정도는 만보걷기를 하고있다.

진작에, 이렇게 신랑의 건강을 조금 더 살피고 챙겨주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지난 시절 내가 너무 무심한 아내였나 싶어 미안한맘이다.


한가지 문제는 내가 SNS와 네이버카페를

자꾸만 들락날락 한다는 것이다.


난임판정 후 내 핸드폰에서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이제 30대 초중반인 내 지인들은 인스타그램에 행복한 육아의 순간 올리기 경쟁을 하고있다.

'내 아이가 이렇게나 귀엽다. 이렇게나 잘 자고, 엄마아빠에게 예쁜말을 하고, 예쁘게 웃어준다. 육아의 스트레스와 피곤은 절대 없고 나는 내 아이를 키우는게 세상에서 지금 가장 행복하다.


이렇게나 행복한 부부이고, 이렇게나 행복한 엄마아빠다.'

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면, 가슴이 아려온다.


예전엔 그냥 'OO집 아기야~ 진짜 귀엽다. 처음 아이스크림 먹는 표정봐! 역시 아이스크림은 최고의 음식이지.. 귀여워..'하고 말았는데


마냥 부러워하고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이고 바보같아 보여서 지워버렸다.


아직 남편핸드폰에 깔려있는 내 인스타그램 계정때문에,

퇴근후면 남편 핸드폰으로 잠깐 보곤하는게 문제다.

보고 나선 후회할거면서.

우리 남편은 먹고싶은것도 끊어냈는데 나는 SNS하나 제대로 끊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네이버 난임카페를 자꾸만 들락날락 거린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곳에 가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많은 정보를 나눌 수 있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 신랑과 똑같은 사례를 찾는다. 그리고 성공한 사례를 볼때면 희(기쁨)이 오고, 좋지 않은 사례를 보면 비(슬픔)이 온다. 하루에도 얼굴한번 본적없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괜히 혼자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냉 온탕 오가는걸 너무 자주 하면 피부와 몸의 순환에 오히려 안좋다는데,

그걸 스스로가 계속하고 있다.

더이상 읽을 글도 없으면서, 10년치 사례의 글들을 다 읽었으면서, 자꾸만 들어간다.

핸드폰을 뺏어야할 것 같다.


글의 힘이 서로를 더욱 단단히 엮어준다.

당신이 블로그 쓰기 시작한게 참 잘한 것 같아.
나에대한 당신의 속 마음을 알 수 있고,
우리가 미처 말로 나누지 못한 많은 생각들을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  신랑이 말했다.


이틀 전에 남편이, 내가 글을 쓰는게 좋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때, 올해 들어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내가 쓰는 글을 통해서 서로의 이해심과 사랑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 썼던 글에 글로 누군가와 소통하고싶다는 이야기를 남겼었는데,

그 소통자의 1호가 나의 사랑하는 신랑이라는게 더욱 기쁘다.




내 마음을 알아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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