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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ug 20. 2021

8.[난임일기]말할 수 없는 비밀

답답한하고 외로운 싸움이 이어지는 나날들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잖아요

불쌍해하지는 마세요, 그냥 잘 될거라 걱정말라 해주세요


난임이란, 여자쪽의 문제이든, 남자쪽의 문제이든, 어디에도 말을 하기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난임부부가 더 힘든지도 모른다.

난임이라는 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난임 부부에 대해서 거의 '암 환자'수준으로 인식하고 불쌍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를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이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중병에 빠진 것과 비슷한 것 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동치는 감정의 물결 속에 버텨야한다.

걱정이 없어요. 잘될거예요. 이미 잘 되었어요.


하지만, 나도 진단을 받고 나서 몇일 내내 난임이 엄청난 '중병'인 것 처럼 굴었다.

하루종일 툭 치기만 해도 눈물이 났고, 걱정에 잠을 못이뤄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야만

잠들 수 있었다. 이마저도 점점 내성이 생겨 잠을 청하기 힘들어졌다.


신랑을 볼때면 너무 안타깝고, 가여운 기분이 들었다가도,

문득 신랑탓을 하며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감정 조절 중추가 제 기능을 못했다.


하루종일 세상을 원망했다. 왜 이렇게 인생이 산 넘어 산이냐고 원망했다.

학창시절 공부도 힘들었고, 대학가는것도 힘들었고, 취직도 힘들었고는데

자연스럽게 우리를 닮은 아이 하나 품고 낳는 것이

그리도 큰 욕심이냐며 따져 묻고 싶었다.

저출산 시대에 이렇게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

좀 자연스럽게 줄 수 없냐고 울며 소리치고싶었다.


세상과 내가 분리된 듯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보려면 함께 건강하게 먹고 운동을 해야하니

부추, 토마토, 마늘, 소고기, 양파, 갖가지야채들을 많이 넣은 요리도 했는데,

무슨정신으로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요리하는 손길 한번마다, 나물을 버무리는 손 끝 하나까지, 간절함으로 기도했다.

이 음식이 우리 신랑을 건강하게 해서 우리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머리속이 언제나 꽉 차 있었다. 걱정을 했다가, 괜찮을거라 생각했다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미안해, 나 혼자 감당하지 못해서.

검사 다음날에, 나는 결국 이해하지 못할 외로움과 결과에 대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엄마에게 안좋은 소식이 있다며

'신랑이 수술을 해봐야,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성적으로는 친정에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그게 수백번 맞다고 생각했다.

신랑이 친정집에 갈 때 마다 마음이 힘들까봐, 말하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원래 여자가 문제가 있으면 시댁에는 남자문제라고 알리라 했고,

남자문제가 있으면 친정엔 여자문제라고 알리라 했는데,

나의 이 약한 멘탈은, 이겨내지 못했다. 신랑에게 너무 미안했다.

신랑의 마음을 챙기기보다는 내가 미칠 것 같은 지금을 이겨내려면 나를 안아줄 가족에게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기적인 아내였다.


크림파스타를 먹던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행히, 신랑을 미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쳤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에 신랑에게 '많이 아플텐데 괜찮겠어?'

라는 말을 건네주는 엄마가 고마웠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도 '어떻게해, 속상하겠다.'

라는 짧은 감정읽기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짧은 말이 내 감정을 알아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어 고마웠다.


'아직, 수술을 해보지도 않고 결과가 확정난것도 아니니 너무 걱정말고 잘 될거다.

신랑 마음 편하게 해줘라.'라고


꾹꾹 눌러 말하는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누구보다도 연약한 심성의 엄마였는데, 우리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강한사람이었나,

역시 하나님은 사람을 바꾸시는구나 생각했다.



엄마의 포옹이 필요했다.

어릴 때 부터 우리가족은 서로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부끄러움이 많고 인색해서,

사랑한다는 말이나 포옹을 서로 해준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가끔씩 포옹을 할 때면, 정말 서로 아무런 갈등이나 문제가 없음에도

갑작스레 느껴지는 사랑에 눈물이 나곤한다.

엄마의 포옹에 무너져내렸다.

깊은 속 안에 있던 울음이 꺽꺽대며 쉼없이 공기중으로 솟아나왔다.



'괜찮아, 다 괜찮아. 아이가 없어도 된다. 결혼생활에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는건 아니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변함없이 서로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게 좋은거란다.

아이에 네 인생을 걸고 목 맬 필요 없어. 네 삶에 아이가 다는 아니잖니.

네가 제일 중요해.


요즘 세상에 얼마나 재밌고 신기한 것들이 많은데,

남편이랑 손 꼭 잡고 그런 것들을 탐험해가며 살아가는 삶도 좋단다.


속상하겠지. 그렇지만 너무 심려치 말아라. 죽을병도 아니잖니.

너와 신랑이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우리 딸, 어릴적이 얼마나 많이  귀여웠는데,

그렇게 똑 닮은 아이 하나 낳으면 좋으련만, 엄마도 많이 속상하구나.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둘이 의지하면서 준비하렴.


말에는 권세가 있으니, 자꾸 안좋은 생각과 안좋은 말들을 하지말고

좋은쪽으로만 생각하도록 해라.


이렇게 판에 박힌 교과서적인 말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게 최선인 것 같구나. 힘 내거라 우리 딸.'



어릴 적엔 내가 힘들어도 나를 안아줄 줄 모르는 엄마였는데,

어느새 엄마는 정말 큰 어른이 되어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평생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안아주고 위로해줄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나는 내가 지켜야한다며 철갑옷을 입고 경계하며 살았던 내게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신랑이 와주었고,

이제는 친정엄마도 나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구나.


그래도, 내가 살 수 있겠다. 이젠 나만 노력하면 더 좋아지겠다.

라는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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