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 가져온 삶에대한 고민
참 많이도 울었고, 참 많이도 힘들어했다.
많이 좋아졌지만
사실, 아직 수술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불쑥 걱정이 올라오곤 한다.
진단 몇일 후 잠을 청하기 위해 들어간 우리의 침실에서,
매일 잠들기 전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해, 좋은꿈 꿔.' 하고 사랑을 확인하던 그 장소에서
우리는 서로가 슬픔에 휩싸여 가시돋힌 말들로 우리의 사랑에 생채기를 냈다.
신랑이 사랑을 잃은 無의 슬픈 눈으로 내게 말했다.
신랑이 사랑을 잃은 無의 슬픈 눈으로 내게 말했다.
당신에게 이미 나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이미 아이라는 존재가 나보다 우선시 되고있어.
그러니까, 내 감정은 알아주지 않고 매일같이 울고 걱정하지.
이미 모든게 실패한 것 마냥.
아직 수술은 해보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마음속에는 이미 끝난 것 처럼 굴어.
이게 내 잘못도 아닌데, 당신은 가끔 날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해.
나는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결혼했지,
나의 잘못도 아닌 것으로 인해서 당신에게 평생 미움과 원망을 받으며 살고싶지 않아.
당신도 이혼까지 생각했다고 했잖아, 정말 이렇게 살거라면 차라리 이혼해서
멀쩡한 남자 만나 아기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
신랑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나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음에도, 실의에 빠져있었고,
신랑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탓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번 일로 가장 슬프고 절망적이고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를 받은 것은 그인데,
가장 최고의 편이 되어야 할 아내라는 사람이 든든한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이던 결과에 쉽게 해서는 안되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던
몇일 전 내 과거의 잘못도 있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도 모진말을 해 상처를 주었단 말인가.
그렇게 모진 말을 해 상처를 주면 무어라도 달라진단 말인가.
그와 나의 상처가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할 뿐이라는 걸 알아야했다.
나는 왜그리도 아이를 낳고싶었던 것인가, 생각해봤다.
분명히20대의 나는 결혼도 하고싶지 않았고, 물론 아이도 낳고싶지 않았다.
내가 버는 돈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친구들과 세상을 누비며
해외로 뻗어나가는 삶을 살고싶었다.
왜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까지 슬픔에 빠질 정도로 아이가 간절해 졌을까.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진 것은
전적으로 신랑에 대한 사랑과 믿음 덕분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하고 나의 남은 삶을 함께 해도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하고 가정의 일이라곤
전자렌지 돌리는 것도 못하는 아빠를 보고 자랐고,
거칠게 욕을 해대며 시험기간이면 씻지도 않아 냄새를 폴폴 풍기고
괜한 내기를 했다가 속좁게 토라지는 대학 동창들을 보면서
역시 남자들이란, 하고 결혼이란 단어를 내 생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너무나도 세심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했던 말들과 나도 모르는
내 취향들을 기억하며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말도 어찌나 부드럽고 예쁘게 하는지, 엄청 느끼한 멘트는 아니었지만
나를 향한 사랑이 가득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기분좋을 때 부르는 콧노래도 나의 행복이었다.
나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 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바라볼때면 기분좋은 눈웃음으로 화답하는 사람이었다.
결혼한 뒤에도 참 좋은 남편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돈이 많아서 혼자 돈 펑펑 쓰러 다니는 결혼생활보다,
음식물쓰레기 내 손에 묻지 않는황홀한 결혼생활을 선택하세요.
그게 진정한 럭셔리 결혼입니다
물론 결혼하고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는 그런 허황된 약속은 하지 않겠다
공약했지만, 결혼 3년동안 음식물 쓰레기는 절대 내 손에 닿지 않게 한다며,
그게 내 결혼생활의 신념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철두철미하게 지켜주는 신랑이었다.
'주말에 나를 이렇게 혼자두다니이이~'하는 단톡방에 울리는 엄마의 포효를 보고도
밤 11시에 들어왔던 우리 아빠와 달리
신랑은 나를 집에 두고 혼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도 잘 없는 사람이었다.
친한 친구들을 만날때도 부부 동반으로 만났고, 술은 고사하고
학생들처럼 보드게임을 하며 예쁜 카페와 맛집들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뭐든지 좋은 곳,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내게 사진을 찍어 보내서
'우리 다음에 같이 가자. 너무 좋아보여.'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몇 년 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사무실 코앞에 내려다주고,
퇴근할때면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었다.
'진짜 결혼잘했다~ 신랑한테 잘해라~' 라고 매번 칭찬을 받는 신랑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신랑이라니,
나의 널뛰는 감정선을 보고도 괜찮다 진정시키고 안심시켜주는 사람이었다.
신랑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랑과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싶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나보다도 신랑을 닮은 아이를 낳고싶었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나 슬프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든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