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즈음에는 아빠 직장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아침에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을하고, 엄마는 문화센터에서 퀼트나 바느질 같은 가사에 도움이 될만한 취미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어린이집 반별 문을 나서면 중앙의 실내 놀이터엔 UFO모양 우주선이 있었다. 우주선 주위에는 실제 태양계 행성들을 빼닮은 구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시절 어린이집 아이들에겐 그 공간이 자그마한 하나의 우주였다. 우주선은 직접 탑승해볼 수도 있었는데, 요즘같이 버튼을 누르면 실제 우주선에 탑승한 듯한 시뮬레이터 영상은 없었지만 우주선을 작동시킬 것만 같은 색색빛깔의 버튼들이 달려있어 누르면 뿅뿅 소리도 나고 동작이 되듯 빨간 불빛이 점등되곤 했다. 우주선 내부도 반짝이는 전구들이 번갈아 빛을 내며 마치 우주에 떠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주선 기장 부기장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먼 미래에는 우리들도 정말 우주에 저런 우주선을 타고 나갈 수 있을거라고 우주에서 보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우리는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듯 까만 우주 배경 중간에 놓인 파랗고 녹색인 지구별 사진을 보며 신기해하곤 했다.
엄마는 문화센터에서 나의 소근육 발달을 위한 놀이책을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들고다니기도 묵직하고 꽤나 두툼한 헝겊 책이 완성되었는데, 책을 펼쳐보면 빨래집게로 빨래줄에 다양한 옷을 걸 수도 있었고, 신발 리본끈 묶기 연습도 있었고, 작은 빌라 모양의 건물 창문을 열면 귀여운 동물친구들이 나오기도 했다. 청바지 지퍼 올리기 연습도 있었고, 바다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듯 위치는 바꿔 붙일 수 있는 찍찍이물고기 바다도 있었다. 그 당시엔 그저 신기해하며 가지고 놀기에 바빴는데, 초등학교에 가서 바느질을 배우고 나서는 엄마의 솜씨는 신의경지에 가깝다는걸 깨닫고 그 책은 나의 추억보물 1호가 되었다.
그 책 안에 담긴 엄마의 나를향한 정성과 사랑의 마음이 너무 좋았다. 아이를 낳는다면 나도 엄마처럼 직접 손으로 만든 놀이책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회사다니랴 집안일하랴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화센터에서 갈고닦은 솜씨를 활용해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올때면 엄마는 동대문시장에서 빨간, 녹색 원단을 떼다가 직접 크리스마스 양말이며, 폭신폭신한 세모쿠션들을 이어붙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서 우리집 벽에 걸었다. 엄마의 작품은 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매년 크리스마스 우리집을 장식했는데, 작품들을 볼 때 마다 혼자 속으로 '역시 우리엄마는 금손이야. 진짜 멋있어 장난아니야.' 생각하며 자랑스러워 하곤 했다.
그 시절 아빠가 좋은 회사에 다니며 힘들게 돈을 벌어온 덕분에 엄마와 내가 좋은 환경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게 참 감사하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 나보다도 어린 나이의 아빠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많이 힘들지만 이 시간들이 가족들에게 정말 많은 행복한 추억들을 안겨줄거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며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