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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Oct 30. 2021

내사랑 곰돌이와 생일파티

90년대 라떼 생일


요즘 아이들은 생일이되면 넓은 키즈카페를 빌려서
키즈카페 놀이시설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어른들처럼 우아하게 예쁜 그릇에 담긴 파스타와 고블릿잔에 든 생과일쥬스를 마신다고 한다.
생일 주인공인 여자 아이들은 그날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화려하게 레이스가 달린 공주풍드레스를 입고 동물모양 머리띠나 왕관을 쓰고
명화 최후의 만찬의 예수님처럼 파티상 가운데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더라.
뭔가 자본주의 속 생일파티 같은 느낌이 들어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나의 90년대 어린이들 생일날엔
집집마다 엄마들이 직접 요리를 준비해주고,
학교며 학원, 동네 친구들까지 전부 초대해서
거한 생일상을 나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들을 하나씩 열어보는 시간을 가지곤했는데,
내가 생일 주인공일때는 어떤 선물이 나올지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했고,
내가 초대받은 친구일 때는 내 선물 앞에 너무 대단한 선물이 나와서
내 선물이 초라해지지 않길 바라는, 친구가 진심으로 좋아해주어으면 하는 초조한 마음이 가득했다.

내 생일날은 1년에 이틀이다.
태어난 날엔 아빠가 회사일로 바빠서 출생신고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태어난 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저녁생일상으로 케잌초를 불고,
출생신고를 한 서류상 공식 생일날에는 친구들과 파티를 했다.

가족 생일상일 땐 엄마는 자주 맛있는 경양식을 요리해줬다.
두툼한 돈까스나 스테이크가 메인이었는데,
양송이와 양파를 큼지막하게 썰어넣어 직접 만든 데미그라스 소스맛은
포크 끝으로 살짝 찍어먹기만 해도 입안에 감칠맛이 가득, 침샘을 자극하는 맛이었다.
이에 곁들였던 포슬포슬한 감자에 마요네즈를 넣은 보드라운 감자샐러드까지 한입 하자면
'이것이 진짜 행복한 생일이지-' 하는 맛이었다.
그 옛날 생일 케이크는 거의 대부분 새하얀 생크림에 알록달록 과일이 올라간 케이크였다.
앞니가 빠져 텅 빈 입 사이로 후- 촛불을 힘차게 불고나서
케이크를 자르면, 빵 시트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크림과 과일들이 보이는 모양이 예뻐 좋았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내 생일상 옆자리는 언제나 내가 사랑했던 새하얀 곰인형이 앉아있었다.
내 몸집보다도 크고 부드러운 곰인형을 언제나 옆에 앉혀놓고 쓰다듬으며
함께 축하하던 생일날은 따뜻한 행복이 가득한 겨울이었다.

친구들과의 생일날이면 엄마는 손수 수많은 요리들을 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이며, 치킨이며, 탕수육, 샐러드, 꽃모양 토끼모양으로 깎은 과일까지 준비해줬다.
생일날 초대받은 친구들은 우리 엄마 음식을 보자마자 내 생일인건 까맣게 잊고서
음식이 너무너무 맛있다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먹어본다고 먹는 일에 집중했다.
가끔 함께온 친구 엄마들은 얘가 이렇게 잘먹는건 처음본다며 놀라기도 했다.
그럴때면 우리엄마의 훌륭한 음식솜씨를 온 천하에 자랑하는 날 같아 자랑스러웠다.
우리 엄마의 음식을 먹어본 친구들은 10~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진짜 충격적으로 맛있었어...'라고 말하는데, 아직까지도 어깨가 하늘로 승천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생일'은 그저 매년 반복되는 날일 뿐이라는 재미없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옛 생일을 추억하자니, 참 많이 사랑받고 자랐구나.
참 특별한 생일들을 보냈구나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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