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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Nov 07. 2021

미니마우스 인형 사주세요

까르푸 주차장의 땡깡어린이


지금은 까르푸라는 대형마트가 한국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옛날에는 주말마다 까르푸에서 한가득 장을 봤다.


한주 간 먹을 식재료를 사는 시간이지만,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마트에는 언제나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달콤한 과자, 귀여운 인형들, 새로나온 장난감들까지

온 마트를 한바퀴 돌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동네 작은 슈퍼만 보다가 이렇게 없는게 없는 큰 마트는 거의 놀이공원이었다.


까르푸에 갈 때 마다 나는 장난감의 유혹을 뿌리치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하루는 유혹에 당하고 말았다.

나를 꾀어낸 주인공은 다름아닌 '미니마우스 손인형' 이었다.

당시 헝겊 인형에 손가락을 끼워넣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팔을모아 손뼉을 쳤다 팔을 벌렸다,

'안녕~'하듯 손을 흔들 수 있는 손가락 인형이 대 유행이었다.

친구들이 가지고 놀 떄 마다 나도 하나쯤은 가지고싶다고 부러워만 했었는데

다른 캐릭터도 아닌 미니마우스라니... 진짜 '이건 사야해 !!!'라는 생각에 순식간에 휩싸였다.

인형을 보는순간 멈춰서서, 사달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엄마아빠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장난감을 사주는데 인색하지 않던 엄마아빠가, 단호한 눈과 말투로 '안돼!'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이던 그 당시 가격이 18,000원 ~ 20,000원 정도씩이나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 작은 인형 하나가 너무 비쌌기에 안된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누구던가, 포기를 모르는 자,

마트를 돌아다니는 내내 '미니마우스 손인형 사줘어어~'하고 노래를부르듯 떼쓰다가

결국 마트 밖 주차장까지 나와서는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드러누워서 울고불고 팔다리를 버둥버둥 흔들어댔다.

밖에서 그렇게 떼를 쓰면 '아! 알았어! 사줄테니까 빨리 일어나!'하는 친구 부모님들을 봐왔기에

나도 성공의 필살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억지로 눈물을 짜내면서 '저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만큼 중요한 물건이라 갖고싶어요'를 표현하다가

버릇없는 내 아이의 창피함에 질린 부모님이 백기를 던지면

그 때 우느라 나왔던 코를 훌쩍거리고 눈물을 훔치며

승리의 미소를 씨익 띄면서 다시 마트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다 계획이 아주 아주 크게 틀어지고 말았다.

나의 얼토당토않은 부끄러운 행동에 크게 화가 난 아빠는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무서운 눈을 하고선 나를 노려보았다.

"당장 일어나. 이게 무슨 버릇이야?!" 하는 날선 목소리엔 힘과 무게가 가득실려있었다.

'아,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하는 어리석음에 몇번 더 버둥거리다가

더욱 더 화난 아빠의 목소리에 내가 백기를 던지곤 조용히 일어났다.

분명히 그정도로 간절하진 않았는데, 포기했다는 사실 자체와

아빠가 겨우 인형하나 사달라는 내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워서 집에 가는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집에가서까지도 오는 내내 계속 울었다는 이유로

아빠는 내게 멍이 들도록 몽둥이를 들었다.

그 때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 그날의 경험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7살의 까르푸 소동 이후로는 무언가 사달라는 말을 입에 담지조차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20대가 되어 동생은 곧잘 옷을 사달라, 가방을 사달라, 이야기를 잘 하는데

왜 너는 똑같은 딸이면서 옷을 사달라는 이야기를 하질 않느냐, 하는 엄마의 말에

그날 이후 내가 뭔가를 사달라고 보채면 엄마아빠가 나를 싫어하고 미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더해 엄마는 내 학원비나 학교 교복, 문제집을 살 때 마다 "어휴, 돈 덩어리야 돈덩어리."라는 말을 해서

'내가 우리집에서 많은 돈을 쓰면 짐이 되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혀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10대였다.

"느그집엔 아들이 없으니 큰딸인 네가 똑똑한 사람이 되서 높은자리도 가고, 출세하고, 돈도 벌어서 부모 봉양해야한다."

라는 할아버지 말도 나의 경제적두려움에 한 숟갈 더 얹었으리라.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그때의 엄마, 아빠처럼 화를 제어하지 못하고 때린다거나, 돈덩어리라는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장난감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규칙같은걸 정한다던가,

너무 비싸면 물건의 가치와 금액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준다던가,

그렇게 해낼 수 있는 부모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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