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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Nov 05. 2021

서울대공원의 추억

동물원이 좋아요



어린시절 가을이면 서울대공원에 자주 놀러가곤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곳은 서울대공원 동물원이었다.
책 속에서만 보던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실제로 눈 앞에서 움직일때면
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따라하곤 했는데,
마치 내가 정말 그 동물이 된 것 처럼 생각했다.

사자와 호랑이를 볼 때면 그 위엄에 눌렸고
코끼리와 기린은 분명히 얌전한 초식동물인데도
키가 너무 커서 무언의 압도됨을 느꼈다.

가장 기억나는 동물은 홍학무리다.
지금도 나는 분홍색을 좋아하는데, 아마 분홍색을 좋아하게 된게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우아한 분홍 학다리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발레하듯 움직이는 홍학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갈대밭 사이 홍학의 아름다움에 멍하니 취해있었다.

서울대공원에 갈 때면 아빠가 목마를 자주 태워주는 것도 좋았다.
어릴 적 사진 속 어린 아빠는 네모네모 잠자리 안경을 쓰고
야상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서
나를 목마에 태워 두 손을 잡고 만세를 하고 환히 웃고있다.
아빠 목마에 탄 나도 온 눈과 입으로 웃으며 즐거워보인다.

서울대공원에는 코끼리 열차도 있었다.
코끼리 열차를 타려면 꽤나 오랜시간 줄을 서야해서 힘들었는데,
엉덩이를 열차에 붙이는 순간 설레임에 기다림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버렸다.
생각보다 빨랐던 코끼리열차를 타고 서울대공원의 전경을 바라보는게 행복했다.
그 당시 엄마는 엄청나게 짧은 똑단발을 하고 까만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어찌나 예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기엄마같지 않았다.

리프트를 타고 동물원 꼭대기로 올라갈때면
발 밑으로 가을의 찬란한 단풍이 빛나고 사람들이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그 때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난다고 몸을 흔들어댔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엄마는 눈을 꼬옥 감고서 흔들지 말라고 말하곤
내릴 때 쯤이면 진이 다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 뒤로는 엄마가 무서워하니 리프트 탈 때는 몸을 흔들지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0대가 되어서도 서울대공원에 가면 어린시절의 기억이 난다.
아빠와 번데기를 먹다가 아빠가 '이거 벌레야~ 이거 먹으면 뱃속에서 벌레가 태어나서 꼬물꼬물 기어다닌다 어떡할래?!!'
했었는데, 지금도 번데기를 먹다가 그 생각이 나면 이내 입맛이 뚝- 떨어지는게
어린시절 아빠의 말이 무섭긴 무서웠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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