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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Nov 08. 2021

앞니빠진 첫사랑

설레던 초등학교 1학년 입학기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던 3월 2일 입학식날,

앞니 두개가 다 빠져 웃으면 맹구같던 나는 운동장 입학생 대열에 서있었다.

초등학교에 간다니 굉장히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초등학생이 되는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레기도하고,

막연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괜히 무서운 맘이 들 때면 내 뒤에 서있는 엄마를 흘낏흘낏 쳐다보면서 안심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에 엄마 품으로 뛰어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하니 용기가 생겼다.


1학년의 나는 염색을 안해도 자연 갈색빛이던 머리에 뽀글뽀글 파마를 했었다.

엄마는 단정하게 예쁘도록 양갈래로 반묶음머리를 해서 동그란 머릿방울끈을 묶어주었다.

동그란 머릿방울은 어느날엔 투명했다가, 뛸때면 '샤카샤카'소리가 나는 작은 반짝이가 들었다가,

오로라처럼 반짝이고 얼굴을 비춰볼 수 있을만큼 반들반들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엔 분홍색 하트방울을 엄마가 사주었는데, 그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보물이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큰맘먹고 빈폴에서 사줬었다는 빨간체크무늬 책가방과 이와 세트인 신발주머니도 정말 좋았다.

그 시절 미니미 만들기 게임이 있었다면 나는 모든 종류의 옷을 입히고도

악세서리는 언제나 그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닮은 아이템을 입혔을거라 확신할만큼 좋아했다.

가방과 옷을 골라주는 우리엄마의 안목은 그 어떤 동네친구엄마들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신이나서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사실 걸어다니는 것은 그시절 내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걷는다는 것은 뛰기위한 도움닫기 몇걸음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같은반에 나를 푸욱 빠지게 한 아이가 등장했다.

이름은 '이수용'.

하얀 얼굴에 볼은 발그레 해서는 살짝 쳐진 눈매에 웃는 모습이 하회탈 같던 장난꾸러기 남자애였다.

매번 나한테 짖궂은 장난을 치고서는 좋아라 웃는 모습에

화가나다가도 이만 정이 들어버렸다.

짝사랑 같은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뛰는 것을 포기하고

때로는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조신하게 걸어보기로 했다.

으 어찌나 몸이 간질간질하던지, 뛰고싶은 마음이 하늘을 뚫고 치솟는듯 했지만

그렇게 남자아이같이 왈가닥스러운 모습이 아닌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고 싶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꽤나 많이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들에게 모두 한가지씩은 부러운게 있었다.

우형이는 눈이 크고 키도 크고 날씬해서 나보다 2-3살 많은 멋진 언니같이 보이곤 했는데,

무얼 입혀놔도 인형같이 예뻤다. 그렇게 예쁜 친구가 옆에 있는게 자랑스럽고 좋다가도

내가 너무 조그맣고 통통한 아이같이 보일때면 괜히 혼자서 입이 대빨 나오곤 했다.

우형이네 엄마아빠는 마르고 키가 컸지만 우리부모님은 그보단 작고 통통해서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안나는 한 친구는 피아노를 정말 잘쳤다.

나도 5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꽤나 자신있는 편이었는데,

내가 겨우 체르니30을 뗄 때 쯤, 내 앞에서 자신있게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모습에 기가 팍 죽었다.

그 친구 집은 어찌나 부잣집 같았는지 온통 고딕풍의 멋진 가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그 친구들에게 기가 눌려 심드렁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래도 언제나 신나는 일 만큼은 내가 1등이라고 믿었다.

그 동네에선 내가 가장 행복한 얼굴로 동네 미사일처럼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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