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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Nov 10. 2021

호수의 빛나던 윤슬과 나

내가 사랑하던 호숫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나는 4발 자전거에서 2발 자전거로 한번 더 도약했다.

보조바퀴를 손수 떼고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을 때 까지

자전거 뒤를 꼭 부여잡고 엉거주춤 뛰어준 아빠의 정성과 사랑에 다시한번 공을 돌린다.

물론 나중에는 잡지도 않고

"아빠, 잡고있지? 진짜 잡고있는거 맞지?" 하는 내 절절한 물음에

"어~잡고있어!" 말로만 하고 옆에서 뛰었다는 거짓말을 했던게 탄로나긴 했지만,

어쨋든 나에게 신뢰를 주기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으므로 아빠를 용서하기로 했다.


두발자전거는 4발 자전거보다 빠르고, 조용했다.

보조바퀴가 땅에 닿이며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게되자

마치 ET의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고있는 기분이었다.

아, 더이상 학교 운동장과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더 넓고 빨리 내달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우리집 옆에는 커다란 호수공원이 있었다.

사계절 아름다웠던 호수공원은 자전거 도로도 널찍하게 잘 되어있어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내달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조금 힘들다 싶을때면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사달라고 졸라 이온음료로 목을 축이곤했다.

호수공원에는 작은 동물원도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공작새를 보기위해서

공원 끝에서 반대편까지 쉬지않고 자전거를 달려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펴내는걸 보곤했다.

이미 화려하고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있어서 예쁜 옷을 굳이 골라입지 않아도 되니까

참 편하겠네, 하고 생각하다가, 평생 똑같은 깃털옷을 입고 있으려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어

공작새가 불쌍해지는 날도 있었다.


5월이면 호수공원에서 큰 꽃축제가 열리곤했다.

온갖 색과 온갖 종류의 꽃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피어있었고,

심지어 대형 토피어리에 꽃을 피워낸 곰돌이 꽃 동상같은 것들도 곳곳에 있었다.

꽃 향기에 취해 꽃 터널도 지나보고, 머리에 제일 마음에 드는 꽃을 꼽고선

한껏 예쁜척하며 사진을 찍기도했다.

꽃 축제의 캐릭터 인형 키링도 엄마아빠가 사줬었는데,

초등학교 내내 가방에 매달고 다니다가 잃어버렸을땐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어디선가 인형이 행복하게 잘 살고있기만을 기도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저녁이면

아주 치열한 팽이싸움도 열렸었다.

어릴때는 나무팽이에 밧줄같은걸 치면서 돌리다가,

플라스틱 팽이에 줄을 감아 돌리다가,

이내 절대 팽이 쇠팽이가 등장하면서 연약한 팽이들에 생채기를 내곤 했다.

우리는 서로 누가 오래 팽이를 돌리는지 겨루거나,

팽이를 몇번 점프 시키는지, 누가 더 화려하게 팽이를 움직이는지, 내기를 하곤했다.

언제나 남자아이들에게 당해낼 수 없어 슬펐지만

무지개빛으로 윗면이 반짝이던 내 플라스틱 팽이를 나는 언제나 사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는 탑블레이드라는 만화가 유행하면서

팽이에 손수 줄을 감을필요도 없이 찰칵- 팽이를 장착하고 한번에 줄을 잡아 빼거나

더 비싼 모델은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 만으로도 강력한 회전력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 자동팽이를 만나니 어찌나 정없게 느껴지던지, 수동 줄팽이를 돌리던 시절이 그리워졌었다.


나중에 도시를 떠나 멀리 이사가던 날엔, 이 호수공원과 멀어지는게 가장 슬픈 일 중 하나였다.

그래서 큰아버지 댁에 놀러가던 때면 언제나 다시 이 호수공원에 산책을 나섰다.

대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다시 자전거를 타고, 꽃축제를 구경하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맥주에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곤했다.

그때마다 언제나 호수는 그 자리에서 햇빛에 부서지며 반짝였다.

잔잔한 호수의 반짝임을 떠올릴때면, 다시금 마음이 평온해지곤한다.

그리고 그 곳의 추억들을 떠올릴때면, 다시금 마음이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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