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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빛초록
Nov 14. 2021
안경쓴 패셔니스타
안경이 뭐길래
초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동네에는 갑자기 '안경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분명히 몇년 전만해도 안경을 쓰면 '안경잡이'라며 못생겼다고 놀림감이 되기만 했는데,
알록달록한 안경테와 안경줄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안경이 초등학생들의 '패션아이템'으로 위상높이 등극하게 된 것이다.
우리보다 몇 살 많은 고학년 언니오빠들은 뽐내듯이 안경을 쓰고 다니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예쁘고 멋있어보여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느순간 안경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눈이 나빠져야 엄마가 안경점에 데리고 갈테니,
눈이 나빠지는게 목표였다. (아 진짜진짜진짜 진짜진짜 바보같았지 뭔가...)
가장 빠르게 눈이 나빠지는 방법은 역시 TV를 코앞에 두고 보는 일이었다.
엄마 말을 잘 듣고 TV에서 멀찍이 떨어져 보던 만화영화를
그 때 부터는 TV코앞에서 보기 시작했다.
'뒤로 가라 !!' 하는 잔소리를 들은 체 만체 하다가 엄마가 화가나면 뒤로 쪼르르 갔다가는
이내 다시 엉덩이를 움직여 조금씩 앞으로 옮겨왔다.
그렇게 하기를 2-3달쯤 지났을까, 결국 수업시간에 인상을 쓰며 칠판을 볼 만큼 순식간에 눈이 나빠져있었다.
엄마에게 말하니, 한숨을 푹 - 쉬며 안경을 사러가자고 했다.
엄마아빠도 눈이 나쁜데 나까지 어린 나이에 안경을 쓰게 된다니 적잖이 속상해보였다.
그런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어떤 색의 안경테를 살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콧노래를 불렀다.
안경점은 정말 신세계 같았다.
한쪽 눈씩 가려서 시력을 측정하는 것도 처음이어서 신기했는데,
오색빛깔의 안경테는 모두다 수집하고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다양한 안경을 쓰고서 거울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얼마나 고르기 어렵던지, 이것저것 다 사면 안되냐고 조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에 고른 안경은 약간의 반투명한 빨간색 안경테였다.
하얀 내 얼굴에 제법 잘 어울렸다.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밖으로 나오자, 온 세상이 나에게 다가오는 듯 올록볼록 올라왔다.
분명히 납작평평했던 땅이 한걸음 씩 내딛을 때 마다 나에게 불쑥불쑥 다가오는데
멀미가 나서 그만 걸음을 멈추고 헛구역질을 하고싶었다.
땅을 볼 수 없어 앞을 보고 걷자니 온 세상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그저 언니오빠들처럼 안경하나 쓰고싶었을 뿐인데
어른들처럼 안경쓰는일은 이렇게나 어지럽고 힘든일이었나 싶어 실망스러웠다.
빠르게 적응하고, 나의 빨간 안경은 언제나 나의 자랑이자 친구이자 분신이었다.
사실 ... 안경 없이는 더이상 생활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안경이 좋은 패션아이템이라고 생각한 것은 결국 몇년 가지 않아 끝났고,
나의 바보같던 안경쓰기프로젝트는 인생에 쓰디쓴 후회만 가득 남겼다.
결국 고등학교때는 일명 '마이너스시력'으로 압축을 2번씩 해도 두꺼운 안경렌즈를 껴야했고,
그 덕에 눈은 단추구멍처럼 작아져서 옛날 놀림받던 안경잡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 쯤엔 예뻐보이고싶어서 그렇게 쓰고싶었던 안경을 벗어던지고 렌즈를 꼈으나,
그 건조함과 뻑뻑함, 씻기의 귀찮음 때문에 23살의 나는 시력보정술을 거금 450만원을 내고 받았다.
다행히도 31살이 된 지금까지 시력은 양안 1.0으로 유지하고 있다.
정말... 다시 돌아간다면...
아예 집에서 TV를 치워버리고 놀이터에 뛰어나가서 먼 곳을 바라보며 뛰어놀게끔 해서
두번다시 안경을 쓰지 않는 인생을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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