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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Nov 20. 2021

에~ 마카레나 댄스를 아시나요?

흥겨운 마을 문화센터

우리집 단지 옆의 조그마한 샛길로 걸어가다보면

헨젤과 그레텔이 걸었을 것만 같은 동화 속 숲길이 나왔다.

구불구불 이어지던 숲길에 서있노라면

봄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득해 입안에 꽃을 가득 머금은 듯 했고

여름이면 푸르른 소나무의 상쾌한 향이 온몸을 감싸고 머리 한올한올까지 깨끗이 씻어내주는 듯 시원했다.

가을에는 아무도 밟지않은 큼지막한 낙엽을 밟으러 다니며 발바닥 한가득 바스락거림을 느꼈다.

겨울에는 소나무에 내려앉은 하얀 눈꽃송이에 만취해 나홀로집에 주인공이 된 것 처럼 뛰어다녔다.

우리에게 사계절의 자연을 선물해준 그 오솔길을 따라가다보면 그 끝엔 자그마한 동네 문화센터가 있었다.


오전이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들이

화려한 원색의 운동복을 입고 힘찬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에어로빅을 했고

점심시간 후엔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뛰어와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조용히 앉아 미술수업을 들으며 정물화나 풍경화, 상상화들을 그려

문화센터 입구 벽면에 자랑스레 한가득 작품을 전시했다.



나도 그곳에서 미술을 배웠었다.

주로 수채화 그림을 그렸는데, 가장 기억나는 그림은 커다란 달항아리 화병속에 담긴 풍성한 꽃다발 정물화였다.

새까만 4B연필을 정성스레 깎고, 이젤 위 도화지에 올리기 전 온 기운을 가득 담아 숨을 고르고선

그제서야 달항아리 화병을 스케치하려는데, 어찌나 좌우 대칭이 안맞는지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웠다.

얼마나 많이 지웠는지 나중에는 도화지에 물 한방울 먹이지 않았는데 도화지가 펑펑 울고있었다.

펑펑 우는 도화지 위에 다시 스케치를 하는 내 마음도 펑펑 울었다.

마음만 울다가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송이송이 맺히더니, 결국은 또르르 이슬같은게 눈에서 떨어졌다.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흐느끼며 우는 나를 보며 놀란 선생님은 나를 토닥이며 새로운 도화지를 몇장이고 가져다주셨다.

그 때 토닥이던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에서 "뭐든 다 괜찮으니 걱정마."라는 말이 전해져서 그뒤론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심기일전하여 새 도화지 위에 다시 용기있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동글동글 달을 닮은 달항아리를 그리고 풍성한 꽃잎도 한잎 한잎, 푸른색 이파리도 한잎 한잎 그려넣었다.

그림이 종이에 조금씩 채워질 때 마다 내 마음도 따스함으로 조금씩 채워져갔다.

전날 밤 정갈하게 짜둔 색색의 수채화물감 팔레트를 꺼내들고선 그 황홀한 색감에 잠시 멍하니 감탄하다가

물먹은 듯 투명하고 맑은 엷은 바탕색부터 천천히 채워나갔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발견한 햇빛에 부서지던 투명한 조약돌이 생각나는 색감이었다.

바탕색을 칠하는 내내 그날 바닷가에서 들었던 조용히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꽃을 그리는 과정은 정말 한땀한땀 장인 정신이었다.

한 잎 한 잎, 다른 색으로 칠해나가고, 그림자와 진한 부분에는 몇번이고 덧칠하면서 포인트를 줬다.

고모가 화장할 때 연한 립스틱을 바르고서 입술 둘레에 얹던 립펜슬처럼 조심스럽게 둘레를 채워나갔다.

꽃잎에서 고모의 화장품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날 몇일 몇시간씩 그리던 작품을 보는순간 감동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당시 잘그린 그림을 그려오면 학교 복도에 걸어줬는데, 나는 달항아리화병그림이 망가질새라 돌돌 말아 비닐봉지에 넣고선 잰걸음으로

표구사에 가지고 달려가 액자에 넣고 선생님께 가지고 갔다.

"정말 네가 그린 것 맞아? 진짜 잘그렸다~ 어디에 걸어야되지?"

"2층 중앙 계단 올라오는 길 가운데에 걸어주세요!!"

욕심쟁이처럼 출근하는 모든 선생님들이 나의 훌륭한 그림솜씨에 감탄하도록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중앙계단은 선생님들만 다니는 길이라 학생들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긴 했지만

하교시간이 지난 늦은 오후에 친구 몇명을 데리고 가서는 몰래 중앙계단을 올라 자랑하곤 했다.

그자리에 반짝이는 액자 속 내 그림과 오른쪽한켠에 붙혀진 'O학년O반 OOO작'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우리 문화센터의 가장 자랑은 오후에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하는 댄스에어로빅 교실이었다.

9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던 '마카레나'노래를 틀고 모두가 모여서 기나긴 대열로 춤을 췄다.

"딴다다 딴다다 딴다다 나나" 신나는 리듬의 음악이 문화센터 건물 넘어 동네까지 울려퍼지면

아이들은 피리부는 소년의 피리소리에 홀린듯 줄지어 달려가 새로운 줄을 만들어 마카레나 춤을 추곤했다.

학교 마지막 수업이 체육시간이던 날이면, 새하얀 운동복을 입고 달려가 춤추는 아이들이 마치 눈송이같았다.

경쾌한 리듬을 밟으며 팔다리를 쭉쭉 뻗고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 "에~마카레나! 헤이!" 를 외치고

옆자리 친구와 손뼉도 짝 - 치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모임에 온 것 같이 행복했다.

문제는 나의 통통한 몸으론 마지막 스트레칭 할 때 다리가 찢어지질 않아 선생님이 억지로 누르셨는데

그때마다 양 다리가 떨어져나가는 건 아닌지 흠칫 놀라곤 했다.

땀을 한가득 내고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다시 만난 오솔길의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땀을 식혀줬다.

그리고 우린, 지치지 않고 다시 놀이터로 뛰어들어갔다.

하루종일 그렇게 뛰어놀던 그 시절, 그 마음 깊은 곳 까지 기뻤던 나와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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