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원짜리 환타를 팔던 슈퍼가 이사간 곳 옆에는 야트막한 뒷동산이 또 하나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 누구도 찾지않는 그곳에, 동네아이들은 제 세상인듯 터를잡고 철마다 동동 뛰어다녔다. 수건돌리기 하기 좋을만큼의 동그란 땅 주변으로 기다랗고 풍성한 나무들이 정승같이 동그랗게 심어져있었다. 시골길에서 본 정승은 하나같이 무섭게 생겨있어 마을을 지켜주기는 커녕 나를 혼낼 것 같아 무서웠는데, 뒷동산에 정승을 닮은 나무는 한 가지가지 마다 나를 포근히 감싸 지켜주는 듯 따스했다.
봄이면 뒷동산 가는 길에 자주빛 철쭉과 빠알간 사루비아가 알록달록히 앞다투어 피었다. 붉은빛 화려함에 황홀해하며 동산 중심에 오르면 온통 하이얀 아카시아나무가 가득했다. 아카시아꽃은 엄마가 전자렌지에 튀겨주던 하얀 옥수수팝콘같아서 왠지 고소한향기가 날 것만 같았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옥수수 창고 폭발이 있던 날, 팝콘이 날리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뒷동산에서 떨어지던 아카시아팝콘의 부드러운 꽃잎과 향기를 기억했다. 90년대에는 어느 슈퍼를 가도 '아카시아껌'이 매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을만큼 인기가 많았다. 나도 그 껌을 참 좋아했는데, 조금만 씹어도 단물과 꽃 향기가 다 빠져 울상이곤 했다. 봄에는 그 껌을 살 필요도, 울상이 될 필요도 없었다. 뒷동산에 오르면 아카시아 껌 향기의 100배도 넘는 향기를 온몸에 지워지지않는 향수처럼 뿌릴 수 있었다. 간식을 사먹을 용돈이 떨어질 때면, 우리는 봄꽃을 잘근잘근 씹어 꿀을 먹곤 했다. 철쭉과 사루비아, 아카시아 나무의 꽃들은 무참히도 우리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어찌나 향긋하고 달콤했는지, 꽃잎에 숨어있던 개미를 먹어도 퉤퉤거리지 않을 만큼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꽃을 먹는걸 보곤 진달래 꽃 꿀에는 독성분이 있다고 어른들이 무섭게 얘기하곤 했는데, 꿀에 눈이 먼 아이들은 철쭉과 진달래의 생김새를 구분하지 못하곤 보이는 덩쿨마다 붙어 꽃을 뜯어먹었다. 가끔 들려오는 진달래꿀 독 중독으로 고열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다. 어느날 아빠는 우리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아카시아 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산들을 망쳐놓고자 자국의 꽃나무를 옮겨심은거라고, 아픈 역사의 상징이라고 말한게 기억이 난다. 그걸 들은 이후론, 괜히 아카시아 나무가 미워서 그 이듬해 봄엔 자주 찾아가지도 않고, 그래도 향기가 그리울 때면 이따금씩 가서 나무 둥이를 퉁퉁 치고 가지를 흔들어 괴롭히곤 했다.
2000년이 넘어 태어난 아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90년대 우리 동네 뒷동산에는 여름밤이면 반딧불이들이 저마다 반짝이며 화려한 군무를 췄다.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선한 여름밤공기를 마시며 가족들과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반짝, 그리곤 잠시 어둠, 또 반짝, 하는 것이었다. 내 눈이 잘못되었나? 하고 눈을 한껏 세게 비벼보아도 이내 다시 반짝, 반짝, 불이 들어왔다. "엄마 !! 아빠 !!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나봐 !! 아니면 별이 이렇게 낮게도 있는거야?" 나는 진지했다. 부모님은 정말 "하하하하하" 배를 부여잡고 웃으시더니 "그건 반딧불이라는 거야. 잘 보면 날개달린 벌레야. 꽁무늬에 불이 들어오는 벌같이 생겼단다."라고 설명해줬다. '아니, 반짝이는 벌레라니? 벌레...벌레....' 벌레는 귀신만큼이나 무서워서 얼른 반짝벌레로부터 뒤걸음질쳤다. 하지만 날개달린 벌레는 밤의 어두움에 몸을 숨기고선 내 옆으로 다시 와 약올리듯 '반짝' 도망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경을 벗고 보기로 했다. 벌레의 몸이 보이지 않아 제법 봐줄만 했다. 연두빛 같기도, 노란빛 같기도 한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이었다. 밤 하늘 위로는 별들이 빛나고, 눈 앞에서는 반딧불이가 빛나고. 나도 하나의 별이 되어 은하수에 퐁당 빠진채로 밤하늘 물결에 유영하듯 춤을췄다. 여름밤 풀향기,선선하고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바람, 하늘의 하얀 별, 연두노란빛 반딧불, 나를 보고 웃는 엄마별, 아빠별, 동생별. 황홀했다.
옛 선조들은 밤이 깊으면 호롱불 대신해서 반딧불이를 잡아다 불을 밝히고 글공부를 했다기에 나도 한마리 잡아다 방에 친구삼아 둘까, 하다가 아침 밝은 빛에 보일 벌레모양은 역시 싫고, 혹시나 반딧불이가 통 안에서 숨이 막혀 죽으면 너무 마음이 아플거라 그만두기로 했다.
요즘은 반딧불이를 보려면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거나,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가서 비싼 돈을 내고 투어를 해야하는데 그 옛날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었던 내가 참 행복했구나 싶다.
뒷산 언덕배기에는 우리가 사계절 내내 포대자루로 미끄럼틀을 타는 흙비탈길도 있었다.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저마다 시멘트포대며, 비료포대, 할머니가 고추가루를 담아뒀던 포대를 몰래몰래 가져와서는 비장한 표정으로 높은 비탈길 초입에 진입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출발 선 절반 이상 포대를 내려놓고, 엉덩이로 깔고 앉아 포대 앞을 두 손으로 야무지게 움켜잡곤 나선형 모양을 만들었다. 1명, 2명, 3명 쪼로록 앉아선 하나, 둘, 셋 출발!!! 하고 경쟁을 했다. 빠르게 가려고 몸을 한껏 뒤로 눕히다가 몸이 중심을 잃고 그만 휘청, 뒤로 넘어져서는 온몸에 흙을 뒤집어 썼다. 몇시간을 탔는지 엉덩이는 다 쓸리고, 돌뿌리와 굵은 나무뿌리에 꼬리뼈가 쿵쿵 내리 찍혀 집에가는 길엔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우리는 놀이터의 깔끔하게 반짝이는 철제 미끄럼틀보다 흙바닥에서 타는 포대자루미끄럼틀이 더 좋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의 튼튼한 어린시절의 내면은 절반이 자연이 키워냈다. 앞으로도, 많은 어린아이들이 책상에만 갇혀있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성장해나가기를, 우리의 밝은 미래가 되기를, 자연환경이 언제까지나 잘 유지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