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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Nov 25. 2021

달밤의 요구르트 회동

마음도 치유하던 건강음료

노란색 투피스를 입고 노란색 냉동마차를 끄는 우리동네 요구르트아줌마는

아침저녁으로 우리 동네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아침저녁으로 우르르 모여

"요구르트 아줌마, 요구르트 주세요. 요구르트 없으면 야구르트 주세요." 노래를 불렀다.


요구르트 아줌마는 누구보다 일찍 아침을 여는 사람이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떠나는 등교길 아침에는

언제나 어김없이 우리 집 문 앞에 요구르트아줌마가 걸어둔 주머니가 있었다.

대체 몇시에 걸어놓으신걸까, 언제나 궁금할정도로 매일 아침 있었다.

엄마는 주머니를 들여와선 건강음료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 닦고서

냉장고에 열맞춰 넣어두곤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네주곤했다.


주머니는 요술주머니 같았다.

어느날엔 초록색 녹즙이 나오고, 어느날엔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 떠먹는 요구르트가,

어느날엔 엄마아빠가 아침마다 먹는 사과맛 마시는 요구르트가 나왔다.


그 중에 모든 동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단연 귀여운 요구르트였다.

초록열매같은 뚜껑을 타고 한옥의 처마가 생각날만큼 우아한 곡선으로 타고 내려가

공주님처럼 허리를 한번 잘록하게 묶은, 플라스틱 요구르트 통 말이다.

밥을 깨끗하게 다 먹으면 엄마가 상으로 빨대를 콕! 꼽아서 주던 최고의 간식이다.

과일에도 먹고, 과자에도 먹고, 생일케이크에도 먹고,

엄마친구가 가져온 꿀떡, 가게 미용실 개업기념 개떡이랑도 먹었다.

모든 음식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완벽한 음료! 라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언제나 냉동실에 요구르트를 뒤집어 얼렸다.

꽝꽝 언 요구르트를 뜯으려고 이로 얼마나 많이 뜯었는지,

날카로워진 플라스틱에 입술이 찢겨 피가 나는줄도 모르고 계속 물어 뜯다가

엄마가 쯔쯔쯔 하는 소리에 피가 난다는걸 깨달은 적도 있다.

피를봤는데도 야속하게 뜯기지 않던 플라스틱 통이 정말 얄미웠다.

반면에 우리엄마는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뜯기 도사였다.

가위로도 잘 뜯고, 튼튼한 이로 한방에 뜯어서 작은 티스푼으로 떠먹을 수 있게 해줬다.

엄마가 없으면 이 맛있는 요구르트아이스크림을 못먹어 어쩌나...하고 생각할만큼

엄마는 도사였다.

 

요구르트 아줌마는 저녁 퇴근길 쯤에 약속한 것 마냥 꼬옥 우리동네에 한번 더 방문했다.

여름이면 놀이터에서 놀다가 우르르 벌떼같이 몰려가서 음료를 하나씩 얻어먹었다.

장부는 우리엄마 밑으로 달아두실테니 우리가 돈을 낼 필요가 없어서

마치 공짜로 얻어먹는 기분에 더 맛있었다.

겨울이면 해가 일찍 져서 "저녁먹어라 ~~ 얼른 ~~"하는 엄마의 호출에 끌려 들어갔던 모든 아이들이

야쿠르트 아줌마가 오시면 다시금 모여들었다.

어찌나 빨리 만나고싶어 급했는지, 모두가 추운지도 모르고 팬티바람으로 몰려나왔다.

그 뒤로 "에고고고... 못살아 정말 !! 바지는 입고가야지 !! 감기걸린다 !!" 하는 엄마들의 애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길가에 모여서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팬티 요구르트 회동을 즐겼다.


그 많은 날들 함께 요구르트를 마시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부지런히 요구르트를 배달하시던 아주머니는 건강하실까,

모두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

오늘도 퇴근 후 저녁 길 요구르트 한 줄을 사다 냉장고에 줄맞춰 고이 넣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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