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1월 30일, 첫번째 시험관시술 진료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무사히 시작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시작에대한 설레임, 그리고 약간의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어지러이 섞여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시험관시술은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했던가,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괜시리 또다른 문제가 불쑥 고개를 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약은 잘 챙겨먹되 음식이나 생활 습관을 무리하게 바꾸려 하지 않았고고, 시간이 나면 부지런히 놀러를 다녔다. 즐겁게 생활하다보면 어느새 다가와 있을거라 생각하며 촘촘하고 빠르게 시간을 보냈다.
새로 옮긴 사무실에서는 굳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았으나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휴가 승인을 위해서 양해를 구해야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괜히 민폐끼치는 죄인이 된 것 마냥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막상 시작할 때가 되니 벌써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가 된 것 처럼 용기가 생겼다. 참, 소문에는 발도 아닌 모터가 달렸다고 했던가, 예상은 했지만 회사 전체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난임시술을 받는다더라, 2세 계획이 있다더라,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더라, 결혼한지는 몇년이 됐다던데, 같은 구설수가 자주 오르락내리락 들려왔다. 유쾌한 소식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를 해대니, 그렇다면 뒷말 들은 것 만큼 당당하게 배려도 받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나에게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요즘 병원가면 2-3시간씩 대기할 만큼 사람이 많아요~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잘 될거에요~"하고 둘러대는 여유마저 생겼다. 간혹 불쌍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눈빛이 아직까진 견딜만하다. 어차피 잘 될 거니까 하고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피검사, 초음파 등 전반적인난임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새로 받아든 검사결과는 예전 검사결과보다 많이 좋아져있었다. 병원의 차이였을지, 담당의 차이였을지, 그동안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일지 모르겠으나 줄어든 난소나이를 보며 내심 기분이 좋고 안심이 되었다.
병원을 옮기길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위적이고, 설명도 잘 해주지 않고, 연계된 병원은 본인이 추천해준 곳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태도, 난소 나이가 많아서 빨리 시도해야하고, 쉽지 않을거라고 차갑고 딱딱한 표정으로 경고하듯 이야기하던 예전의 담당의와 달리 모든 질문에 대해 번거로우실 텐데도 '잘 듣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눈으로 안심시켜주시고, 세세한 안내까지 모두 도와주셨다. 오랜만에 생물학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을 들으니 떨리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처음 자가주사를 시작하던 날, 간호사 선생님께 설명을 들었음에도 주사를 맞기 30분 전부터 온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진짜 내 배에 바늘을 찌를 수 있을까? 혹시 피가 나면 어떡하지? 뭘 잘못하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이 앞섰다. 한편 태평한 우리 신랑은, "자기는 맨날 앞서 걱정하다가 막상 할 때 되면 엄청 잘해 ~ 걱정 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씩 웃어보였다. 안심 반, 얄미움 반이었다. 자존심 상하게도 역시나, 나보나 나를 더 잘 아는 신랑의 말이 맞았다. 주사기를 꺼내들고는 아주 무심하게 배에 찔러 넣었다. 조금 따끔했지만, 걱정하던 것 보다는 수월했다. 역시 실전에 강하구나 싶어 실웃음이 났다.
하지만 호르몬을 강제로 과다 투여하는 내 몸의 반응은 나의 무심함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법. 주사를 놓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아랫배는 점점 불러오고 단단해져 주사바늘을 넣을 때 아프기도 했다. 소화력은 또 어찌나 떨어졌는지, 겨우 귤 하나 먹고서 체하는 바람에 한참동안을 고생했다. 은근한 두통과, 은근한 피로감, 은근한 졸음이 하루종일 쏟아지고 참 우습게도 밤이되면 불면증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어이없는 날들을 보냈다. 호르몬이 가지고 노는 심리는 때때로 나를 불안과 우울의 골짜기로 떨어뜨렸으나 그 때 마다 신랑에게 꼬옥 안겨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아침출근을 알리는 소리만이 존재하던 내 핸드폰알람은 약먹는 시간, 주사놓는 시간에 맞춰 바쁘게도 울려댔다. 한번이라도 까먹을세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저녁즈음에 주사를 맞다보니, 하루종일 온통 집에가서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부담스런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나름 예상하던 시점에 시술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번의 진료 중 두번이나 토요일에 잡혀주어 휴가를 절약할 수 있었으며 내 몸은 고맙게도 평균이상의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찌워둔 뱃살 덕에 주사바늘도 그리 아프지 않았고, 난자도 아주 이상적으로 12~15개 정도가 자라고 있다. 담당의 선생님께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5일배양 신선이식까지 이번 달 내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하셨다. 그런데, 처음 경험하는 난자 채취를 2일 앞두고 있는 지금 처음 시작보다 자꾸만 겁이 나는게 유일한 걱정이다. 몸이 아플까보다는 잘 안될까봐. 혹여나 고차수로 넘어갈까봐. 겁이 난다. 직장을 다니며 시험관시술을 병행하다보니 자꾸만 줄어드는 휴가갯수와 회사의 눈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또 비용은 어찌나 많이 드는지, 내 생에 병원비를 이렇게나 많이 지출해보기는 정말 처음이라... 이래 저래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신체적 부담이 나를 짓누른다.
그래도, "자기는 교과서적인 진행상황이라 정말 잘될거야. 걱정말라니까? 진짜야~"라고 나를 안심시키는 신랑이 옆에있기에, 손 꼭 잡고 마음을 다잡아보려한다. '정말 잘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