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사하게도 난자 채취일이 금요일에 잡혔다. 주중에 잡혔으면 꼼짝 못하고 아픔을 참고 출근하거나, 피같은 연차휴가를 며칠 더 써야했을텐데 금요일에 수술을 받고나면 연차 소모없이 주말 이틀을 꼬박 쉴 수 있음에 마음이 놓였다. 신랑도 올해 몇일 남지 않은 연차를 나를 위해 어렵게 조정하여 함께 동행해 주어 고맙고, 든든했다.
그동안 과배란 주사를 맞을 때는 생각보다 큰 부작용 없이 나름 수월하게 지나갔다. 가끔 주사를 맞고나서 분홍색 립스틱을 아이가 실수로 배에 발라둔 듯 울퉁불퉁하고 빨갛게 멍 자국이 오르기도 했지만 이내 조금씩 옅어졌다. 가려움을 유발하는 두드러기도 없었고, 극심한 두통이나 체력저하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사 맞기 전 30분간 아무도 모르게 혼자 내적긴장을 하며 "아... 진짜 맞기 싫다..."하는 게 거의 유일한 부작용이었다. 그런데 채취하기 2일 전 부턴가는 난포가 점점 더 많이 자라서인지 약간의 통증이 있었고, 배도 더 빵빵하게 차오르고, 소화도 잘 안되고, 걷는 내내 양쪽 골반이 뻐근하게 느껴졌다. 정말 채취까지 2일밖에 안남았으니 참을 일이지,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끔찍할거라 느껴졌다.
그동안 과배란 주사와 배란방지주사를 각 1대씩 매일 맞았다면, 채취 직전에는 처방이 조금 달라진다. 채취 2일전 오전에 배란방지제(Cetrotide)를 맞고, 밤 10시쯤 배란촉진제(Ovidrel)를 마지막 주사로 맞는다. 채취 전날의 축복은 맞아야 할 주사가 없어 후련한 것...! 10일간 매일 맞아야 하던 주사가 사라졌을 뿐인데 얼마나 행복하던지, 원래 주사란 일년에 두어번쯤 맞을까 말까 하는 것으로, 예전의 일상을 하루만 찾았을 뿐인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채취 전날 밤 12시 기준으로는 물도 마시면 안되는 금식타임이다. 그래도 전날 저녁 식사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고, 자기 전 물 한잔도 허락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대장내시경 하느라 3일 내내 두부, 바나나, 카스테라만 먹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헐굴이 헬쑥해졌을때 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었다. 괜히 내일 수술하느라 고생할테니~ 하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그날 저녁 식사 이후엔 신랑이 주문해준 딸기도 양껏 먹고, 세상 조선시대 양반같이 드러누워 과자도 먹었다.
드디어 채취 당일날 아침이 밝았다. 걱정과 긴장보다는 오늘 드디어 채취하고 나면 또 하나의 고비를 넘긴다는 후련함이 컸다. 고마운 신랑이 안정적으로 태워준 덕에 편안하게 누워서 병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들어가면 간호사 선생님께 부부 신분 확인, 약물 알러지 반응 및 수면마취 부작용 등에 대한 안내를 받고 배우자 동의까지 마친 뒤에 수술실로 올라가게된다. 주차를 하고 성급히 뛰어온 신랑과 포옹한번 나눌 새 없이 수술실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그리 급하게 행동할 것도 없었는데 바쁜 간호사선생님들께 맞추려면 빨리빨리 이동해야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수술실로 올라가면, 입고왔던 옷들을 수술복으로 탈의한다. 누워있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머리는 한쪽으로 길게 묶거나, 20년만에 해보는 양갈래묶음을 한다. 그리고 수액과 마취제가 들어갈 바늘을 팔꿈치 안쪽에 꼽고, 수술 전부터 커다란 수액을 맞기 시작한다. ㄷ자로 배치되어 말 없이 어색하게 같은 시간대에 수술할 사람들과 앉아있다 보면, 수술실에서 이름을 호명하고 들어간다. 그 이후는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온갖 수술 기구들이 놓여져 있는 수술실의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 눈부신 천장의 불빛을 바라보다 보면 초록색 수술가운을 입은 선생님들이 내 팔다리를 묶어 고정하고, 산소호흡기와 심박수측정기를 연결한다. 팔다리를 묶어 고정하는 시간이 가장 무서웠다. 혹여나 마취가 깼을 때, 통증으로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아프면 이렇게나 단단하게 기브스하듯 동여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어 소름이 쫙 끼쳤다. 이어 담당의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곤, 한숨 푹 주무시고 나면 끝나있을테니 걱정말라는 말을 남기시고 마취제가 투여되고 기절한뒤 회복실에서 몽롱한 얼굴로 깨어나게 된다.
정말 정신을 차려보니 회복실이었다. 작은 침대 위에 누워 주변을 둘러보니 긴 커튼이 드리워져있어 제법 아늑했다. 수술 전에 맞고 있던 수액은 아직도 반이나 남은채로 무심히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 간호사 선생님이 던지신 "불편한 곳 없으세요? 괜찮으세요?" 하는 물음에 끙끙대며 "오른쪽 배가 너무 아파요"하고 대답한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말에 놓아주신 진통제 덕에 조금은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그 상태로 누워서 1시간 30분 ~ 2시간 정도 계속 수액을 맞고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다보면 담당의 선생님께서 채취 결과를 전해주신다.
내 경우는 최종 초음파로 확인했을 때 12~15개의 난포가 자라고 있었는데, 몇개의 공난포가 있어서 최종 결과는 11개 채취라고 하셨다. 보통 초음파로 확인한 갯수보다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갯수도 줄었고, 공난포까지 있다고 하시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채취 갯수가 많아야 수정도 많이되고, 좋은 배아가 나올 확률이 높아서 동결배아도 많이 생겨 혹여나 1차 신선이식이 실패해도 채취과정 없이 동결이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때문에 꽤나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신랑은, 11개도 충분히 아주 많은 숫자고 오히려 몇개 안되는 난자들이 그동안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해서 더 좋은 상태일거라고 다독여주었다.
침대에 누워서 쉬는동안은 시험관이나 임신, 앞으로의 인생계획 같이 거창하고 큰 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계획한다 해서 어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고뇌하며 스트레스 받고싶지 않아 오로지 금식 이후 뭘 먹어야하나~ 쉴땐 뭘 하고 쉬지~ 같이 단순하고 즐거운 생각들만 하고 멍하니 누워있었다. 최대한 즐겁게 살아야지. 아무 생각 말아야지. 그러다보면 좋은 것이 오겠지. 라고 믿으며 떨어지는 수액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그래도 꼭 한번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놓치지 않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