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1차 스케쥴 정리] o 11/28 : 월경시작 o 11/30 : 월경 3일째 병원방문. 과배란 주사 시작 o 12/10 : 난자 채취 - 11개 채취, 9개수정, 1개 신선이식, 5개 냉동(5일배양 2, 6일배양 3), o 12/15 : 5일배양 신선이식 o 12/24 : 이식 10일째 1차 피검사. 수치 13.06 - 프로게스테론 엉덩이주사 처방, 질정 아침저녁 하루 2번 유지 o 12/30 : 2차 피검사
시험관시술에서 가장 힘든 단계는 바로 난자채취다.
위, 대장 내시경 할때와 똑같이 수면마취 후 진행되어 시술하는 동안에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휴식실로 이동하여 마취가 풀려가면서 점점 양쪽 사타구니가 콕콕 찌르듯, 열감이 느껴지며 뻐근한 통증이 이어진다.
그래도 난자채취날 당일은 강한 진통제 주사 덕분이었는지 크게 아프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독서도 하고, 7천보정도 산책도 했다.
조금 무리했는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채취 3일째는 쉬었고, 4일째는 정상 출근해서 업무처리도 많이 할 수 있었다.
복수도 많이 차지 않았고, 일상생활에 문제도 없었기에 이정도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신선 배아 이식 이후였다.
이식한 당일 밤부터 1시간마다 화장실 가랴, 온 몸에 느껴지는 심한 오한으로 식은땀은 가득 흘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식 2일차 부터는 아침과 밤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아침이면 어지러움과 두통으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조차 없었다.
마치 기립성저혈압으로 쓰러졌을 때 처럼 상체 위에 피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몇시간씩이나 지속되어 방바닥을 기어다녔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된다 싶어 간신히 죽을 데우곤,
팔에 몸을 의지해서 한입 먹고 누워서 꿀떡 삼키고 잠시 쉰 뒤에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
조금 참을만한 오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무서운 밤이 찾아왔다.
밤이면 배가 쥐어짜듯 아파왔다. 통증으로 또다시 식은땀이 흘렀고, 이불빨래를 해도 깨끗하고 보송한건 잠시 뿐이었다.
이식 3일째엔 모든 냄새가 참을 수 없이 역겹게 느껴졌다.
음식냄새도, 땀냄새도, 소독약냄새도, 약냄새도, 모든 냄새가 코에 닿을때면 구역질이 나왔다.
이식 3일째에서 4일째 넘어가는 밤에는 9시 즘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10시쯤 한시간도 채 못자고 호흡곤란으로 숨이막혀 잠이 깨버렸다.
그리고 숨쉬기조차 어려운 밤이 이어졌다.
과호흡이 온 듯이 숨을 쌕쌕대고 몰아쉬어야만 간신히 쉬어지고, 진정이 되었다.
진정이 된 듯 해서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하곤했지만, 이내 몇십분 내로 다시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이러다 죽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괴로웠다.
찬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질거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새벽 내내 거실에서 찬 바람을 쐬었다, 말았다 를 반복했다.
아침 9시면 병원이 문을 여니까, 8시 까지만 버티자. 버티자. 하고 참았는데
누워있기만 해도 어지러움이 도저히 사라지지가 않아서 결국 새벽 5시에 응급진료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복수가 많이 찼는지, 차에 누워서 이동했는데도 차가 덜컹거릴 때 마다 온 몸의 장기가 쏠리는 고통이었다.
도로가 어디가 얼마나 많이 패였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지하주차장의 쿰쿰한 냄새와 엘리베이터안에 가득한 방역소독약 냄새를 참지못해
결국 대기실 앞 의자에 쓰러지듯 누워 온 몸의 물을 쏟아내듯 토해냈다.
분명히 나올 것도 없는데, 계속 울컥 하고 입에서 물이 쏟아져나왔다.
엄청나게 진한 위액이었다.
위부터 식도, 입 안까지 불타는 느낌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토해내는 위액을 닦으러 신랑이 동분서주하는 탓에 미안함이 앞섰다.
그나마도 그렇게 토해내고 나니 어지러움이 조금 가셨다.
그리고 어떻게든 병원에서 조치해주리라, 안심되었다.
거의 3일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소화도 안돼서 죽만 먹은 몸 상태로 멍하니 진료실 간이침대에 누웠다.
간단하게 초음파를 보고, 피검사를 하고, 포도당과 수액을 빠른 속도로 맞기 시작했다.
먹은게 없어서인지 혈압은 바닥이었고, 혈관도 찾지못해 결국 손등 가까이의 얇은 혈관에 두꺼운 바늘을 꽂아야했다.
포도당과 수액을 2시간째 맞는데도 몸상태는 도무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계속해서 추위가 느껴지고, 어지러움이 이어지는데, 얇은 혈관으로 수액이 빠르게 쏟아들어져 오는 느낌까지
생생히 느껴지니 구역질이 날 것 같이 징그러운 느낌이었다.
피검사 결과 탈수증상과 혈액농도가 진해져서 혈전위험이 있으니 당장 입원해야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설마, 입원까지 하겠어? 수액좀 맞고오면 낫겠지.' 했는데 입원이라니 정말 끔찍히 싫었다.
그럼에도, 당장에 너무 힘드니 어쩔 수 없다 싶어 코로나검사와 입원 수속을 마치고 입원병실에 멍하니 누웠다.
수액을 3L쯤 맞았을까, 그때서야 조금 몸에 기운이 돌아오고 어지러움증이 가셨다.
여전히 식사시간엔 소화가 안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밥을 먹어야했지만,
한입 먹고 누워있는 정도는 아니니 어찌나 감사한 변화였는지 모른다.
새벽 내내 나의 호흡곤란 공포로 잠을 못잔 신랑까지 같이 고생이었다.
신랑은 집에가서 남은 집안일을 처리하고, 보호자 침구를 비롯해 모든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바리바리 챙겨서
몸을 웅크려야 겨우 누울 수 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음에 너무너무 감사하고, 의지가 되었다.
이 병실에 혼자서 입원한다면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을지, 신랑을 집에 보내둔 내내 혼자있는동안 서러워서
갑자기 눈물바람이었는데, 신랑이 오고나니 힘들고 아픈데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입원기간 내내 의사선생님의 회진내용은 아주 한결같았다.
복수가 차긴 했는데, 복수천자를 할 만큼 심하지는 않고, 난자 채취 후 난소가 부어있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 하셨다.
사실 병원에서 크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다소 무책임하게 들리는 말도 포함되어있었다.
그저 이온음료와 물을 많이 먹고 화장실에 자주 가야하며, 복수와 난소 붓기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었다.
혈액 농도는 수액을 맞아서 잡아주고 있으니 괜찮을거란 말이었다.
입원기간 내내 가장 큰 고역은 화장실에 가는 일이었다.
오른손 손목에 꽂혀있는 수액 바늘이 아프지 않도록 천천히 수액을 옮겨 잡고 화장실에 가야했다.
물을 먹을때마다, 소변을 볼 때 마다 총 몇mL를 마셨고 소변은 몇 mL를 보았는지 꼼꼼히 기록해야했다.
이 작업은 병실에 모든 불이 다 꺼진 새벽에도 이어졌는데,
추운 바람이 새어드는 화장실에서 소변통을 들어 양을 잴 때 마다 정신이 아득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잘 기록해야 일찍 퇴원하지 싶어 열심히 기록했다.
저녁즈음엔 그래도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고 정신이 돌아왔다.
새벽부터는 어지러움이 너무 심해 죽을것만 같아서 시험관시술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뭐 한번쯤 더 겪어도 크게 힘들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갑자기 배 속에 이식한 배아가 생각났다.
잘 붙어있어야할텐데,
이렇게 아픈것도 괜찮으니 무사히 살아주어야할텐데.
괜찮은지 계속해서 물어봤다.
어떠한 기기를 동원해도 정확한 대답을 알 수도 없으면서,
괜히 그렇게 괜찮은지 물어보고, 말이라도 걸면 정말 건강히 붙어있어줄 것만 같아서 자꾸만 물어봤다.
이렇게 어지럽고, 입원까지 할 정도로 악화된 몸상태가 혹시 안좋은 영향을 끼쳤을까 싶어 미안하고 불안했다.
그떄마다 신랑은,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니 아기도 괜찮을거야, 그렇게 짧은시간으로 떨어지진 않을거야."라고
온 몸을 쓰다듬으며 위로해주었다.
고맙고 든든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루만에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하여 퇴원수속을 밟았다.
물론, 완전한 컨디션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전날 밤 내내 딱딱하고 비좁은 병실 침대에 누워있자니
너무 불편해서 둘다 담이 걸려서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아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다시 어지러워지면 동네 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을거란 야무진 계획을 세워두고 기쁘게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