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라는 존재란,
나는 누가 뭐래도 딩크족이었다.
'아이'란 그저 '시끄러운 방해꾼'정도의 존재였고,
학창시절 집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놀이터의 철 없는 웃음소리에 치를 떨었다.
치열하게 공부를 해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 뒤에도 똑같았다.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은 내 삶에 전혀 득이 될 것이 없었다.
20살 이후로 안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관리해온 몸매라인이
아이를 품고 낳으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 분명했고,
육아휴직이라도 하게 되면 남자동기들이 커리어를 쌓아나갈 때 한참 뒤쳐져
모든 것을 다 잊고 응가, 맘마, 엄마, 안돼 라는 단어만 뇌에 남아있을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게 뻔했다.
빠듯하게 시작한 신혼 살림이었고, 맞벌이였으나 벌이는 변변치않았다.
한 달 식비 목표는 20만원이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매일의 아침, 저녁 식사와 주말 식사 모두를 해결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다? 아이 밑에 들어가는 비용만 천문학적일게 분명했다.
환경도 그랬다.
좁디 좁은 구축 아파트 전셋방에는 겨울이면 찬바람이 하도 불어 바깥이 더 따뜻할 지경이었고,
낡은 수도관을 타고 들어오는 녹물은 필터 교체한지 10분만에 필터를 검게 물들였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 작은 생명체를 건강히 키워내겠는가?
아이가 자라올 세상이 나와 같을까봐 겁이나고 미안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책상에 쏙 들어간 좁은 의자 안에 갖힌 것 처럼 자랄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또 다시 경쟁을 겪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할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
그저 누군가를 밟아 이기고, 더 좋은 대학과 더 좋은 직장에 가기위해
내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를 모두 꾹꾹 눌러삼킨 채 부풀어 터질 듯 참아내다
어느 순간 뻥!!!!! 하고 터져버려 걷잡을 수 없이 심연으로 빠져들어갈까봐 무서웠다.
분명 나는 그 아이를 너무도 사랑할텐데,
그 사랑하는 존재가 나처럼 될까봐 그렇게 무서웠다.
그렇게 된다면 필시 가슴이 찢어질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고,
몸도 마음도 갈리고 쪼그라들듯 아주 어려운 과정을 거쳐 아이를 만났다.
모든 과정이 어려웠고,
지금도 육아라는 것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별 것이 있겠는가,
그저 나의 모든 노력들이
사실은 우리 아이를 만나고, 우리 가정을 이루고,
우리가 함께 눈을 마주보며 크게 소리내어 웃기위해
나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어렵고 험한 세상 속에서도 아이를 낳으라 말하고 싶다.
외려 삶을 살아갈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