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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과 프레드릭 코플스톤의 철학 논쟁 -(3)

1948년 벌어진 두 지식인의 토론 번역 및 분석

by 신영

논쟁의 핵심 쟁점 요약

러셀-코플스톤 논쟁의 핵심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의 정의와 전제 조건

토론에 앞서 코플스톤은 신을 세계와 별개인 최고의 인격적 존재이자 세계의 창조자로 정의하자고 제안했고, 러셀도 이를 받아들였다. 코플스톤은 신이 실재하며 철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러셀은 신의 존재를 확증할 수 없으므로 모른다는 불가지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신이 없다면 절대적 가치도 없게 되어 목적은 상대적일 뿐이라는 코플스톤의 주장에 대해, 러셀은 윤리적 가치의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와 별개일 수 있다고 보았다 (예: G.E. 무어의 이론에서 신 없이도 선과 악 개념이 가능함을 언급).


(2) 우주론적 논증 (우연성에 근거한 신 존재 논증)

코플스톤은 라이프니츠의 충분한 이유 원리에 기반하여 우연적 존재들의 총합인 우주에는 그 자체 밖에 있는 충분한 존재 이유(원인)가 필요하며, 그것이 곧 신이라는 형이상학적 논증을 펼쳤다. 논증의 골자는 모든 개별 존재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가지지 못하므로, 전체 세계도 자기 원인을 가질 수 없고, 무한히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도 완전한 설명이 안 되므로,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를 스스로 필연적으로 지니는 존재(필연적 존재)에 도달해야 한다, 따라서 신(필연적 존재)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필연적 존재 vs 우연적 존재의 의미

러셀은 필연적 존재 개념 자체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필연적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분석 명제에나 적용될 뿐, 존재 자체를 기술하는 데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필연적 존재란 말을 쓸 수 있으려면 그 존재의 부재를 주장하는 것이 모순이어야 하는데, 러셀은 그런 존재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필연적, 우연적이라는 구분은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논리 체계의 산물이라며, 현대 논리학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코플스톤은 이에 대해 필연적 존재 = 부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개념을 러셀이 이해 못하는 척하는 것은 부당하며, 현대 논리학 자체가 형이상학을 무조건 무의미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반박했다.


(4) 충분한 이유의 원리와 우주의 설명 문제

코플스톤은 원인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충분한 이유(sufficient reason)를 정의했다. 우연적 존재는 원인을 가질 수 있지만 필연적 존재(신)는 원인을 갖지 않고 자기 안에 존재의 이유를 지닌다고 설명하며, 충분한 이유는 어떤 존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최종 설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러셀은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해내는 완전한 설명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애초에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응수했다. 그는 인과 설명은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건으로 돌릴 뿐인데, 우주의 전체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찾는 것은 온 우주를 꿰뚫는 통찰이 필요한데 인간은 이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우주 전체에 대해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주는 그냥 있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코플스톤은 왜 무가 아니라 어떤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정당하며, 과학자도 우주 내의 원리를 찾듯 철학자도 우주 자체의 근거를 찾는 것이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러셀의 우주는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대답은 설명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우주에 원인이 없다면 우주가 스스로 필연적이어야 하는데, 우주는 필연적일 수 없으니 결국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다시 주장했다.


(5) 전체에 원인이 필요한가 – 조합의 오류 논점

러셀은 코플스톤 논증이 부분에 성립하는 것을 전체에도 적용하는 조합의 오류(composition fallacy)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에게 어머니가 있으니 인류 전체에도 어머니가 있다는 잘못된 추론에 비유하여, 모든 개별 사물의 존재에 원인이 있다고 해서 우주 전체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코플스톤은 이에 대해, 우주 전체에 현상계 내부의 원인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원인(근거)를 상정하는 것이므로 그 오류를 피했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인류 전체에 어머니(인류 내부의 원인)를 찾는 게 아니라, 우주는 다른 범주의 원인(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러셀의 비유와 다르다고 했다.


(6) 무한 후퇴와 우주의 필요성 문제

이 논쟁에서 러셀은 우주는 설명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다는 쪽을 옹호했고 (후대 철학에서 흔히 우주는 브루트 팩트(brute fact)라는 입장으로 불린다), 코플스톤은 무한히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결국 어떤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못한다고 맞섰다. 코플스톤은 우주가 스스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필연적이지 않으며), 필연적 존재가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셀은 사실 존재하는 것들은 그냥 존재하며, 왜 존재하느냐는 물음 자체가 잘못이라고 응수한 셈이다.


(7) 양자 물리학과 인과성

러셀은 현대 과학의 발견을 거론하며, 양자역학에서 어떤 개별 사건은 (현재로선)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원인이 없다고 여겨진다는 점을 들었다. 이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는 전제를 흔드는 실례로 언급되었다. 코플스톤은 그러한 과학적 견해는 해석의 문제이며, 많은 과학자는 결국 인과적 설명의 틀을 유지한다고 반론했다. 과학 자체가 자연의 질서(인과 법칙)을 전제하고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연 현상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와 우주의 근원을 찾으려는 형이상학적 시도는 정당성 면에서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8) 도덕적, 종교적 경험 논증

형이상학적 논증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코플스톤은 인간의 도덕 경험과 종교적 신비 체험을 거론했다. 코플스톤의 입장은 요약하면 신의 존재만이 인간의 도덕 경험과 종교적 체험을 궁극적으로 의미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신비 체험(예: 성인들의 황홀경)들은 순전히 뇌내 현상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그 최고의 원인을 신으로 보는 것이 가장 개연성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신비 체험이 가져오는 삶의 긍정적 변화(예: 성 프란체스코의 사랑 실천)를 근거로, 그 경험이 진실된 무엇과 접촉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9) 러셀의 도덕, 종교 경험 반론

러셀은 개인의 내적 체험을 바탕으로 외부의 실재를 추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응수했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예: 모두가 시계를 봄)은 실재를 확인하기 쉽지만, 종교적 신비 체험은 사적으로 일어나므로 착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람들이 신뿐 아니라 악마나 영혼 등 온갖 존재를 봤다고 확신하는 사례도 많지만, 그걸 다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반문했다. 신비 체험을 신의 증거로 삼으면, 같은 논리로 악마 체험은 악마의 증거가 될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10) 도덕적 효과와 진리 문제

종교적 믿음이나 신비 체험이 사람의 도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그 내용의 진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러셀의 입장이다. 그는 사람이 허구의 인물(예: 실존하지 않는 영웅)을 동경하여도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영웅이 실제로 존재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비유를 들었다. 즉 유용성과 진리는 별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코플스톤은 선한 결과가 있다고 해서 그 믿음 전체가 참임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체험을 진술하는 사람의 정신적 건전성과 진지함을 뒷받침해준다는 정도로 신중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러셀은 본인 스스로도 어떤 내적 체험으로 인격이 개선된 적 있지만, 초자연적 존재와 접촉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도덕적 개선은 자연적인 심리적 경험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상이 두 사상가의 대화에서 다루어진 주요 쟁점들이다. 요약하면, 코플스톤은 세계의 존재에는 반드시 충분한 이유(궁극 원인)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는 철학적 직관과 인간의 도덕, 종교적 경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설명이 신의 존재라는 신념을 토대로 논증했다. 반면 러셀은 설명을 무한정 밀어붙이는 메타물음 자체에 회의적이고,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에 답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인간의 도덕이나 종교 체험도 초자연적 가설 없이 이해 가능하며, 형이상학적 개념(필연적 존재 등)의 의미성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코플스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론에 대한 분석은 다음편에 계속)



전체 토론 영상 링크 (영어)

https://youtu.be/wMsbD1L5IlQ?si=9UszR1WkZRFYu5Ne


토론의 개요와 앞선 내용

1편 링크 - https://brunch.co.kr/@sypark1124/60

2편 링크 - https://brunch.co.kr/@sypark11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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