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두고 온 여름 - 성해나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풍경으로 남았을까? 가족이란 어떤 관계인가?

by 신영
20250915_225412.jpg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두고 온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고 이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세상의 모든 관계 중 가장 가깝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때로는 가장 아프고 어려운 숙제가 되기도 하는 이름. 성해나 작가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은 바로 이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건넨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희미한 여름의 잔상처럼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자신의 가족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소설은 아버지의 재혼으로 4년간 형제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다. 열아홉 기하에게 여덟 살 어린 재하의 존재는 일상의 균열이었고, 어린 재하에게 무뚝뚝한 형 기하는 다가서기 어려운 벽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엉성하게 ‘가족’을 연기하던 이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남이 되고, 십수 년이 흐른 뒤에야 우연히 재회한다. 작가는 이 재회의 순간을 극적인 화해나 눈물로 채우는 대신, 어색한 안부와 희미한 부채감이 오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으로 그려낸다. 함께했던 과거를 억지로 봉합하거나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그저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선다.


이들의 모습은 몇 해 전 깊은 여운을 남겼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핏줄로 이어진 가족과 시간으로 엮인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며 ‘과연 무엇이 진짜 가족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두고 온 여름> 역시 마찬가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 시절을 공유했던 기하와 재하의 관계는 혈연이라는 절대적 기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가며 남긴 옅거나 혹은 짙은 무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나니 사유의 화살은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서툰 관계는 나의 가족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평생을 함께했지만 늘 어딘가 딱딱하고 서먹한, 세상의 전형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떠오른다.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기가 어색해 그저 묵묵히 서로의 안녕을 짐작만 할 뿐이다. 불과 한 살 터울이지만 지금은 일 년에 몇 번 안부를 묻는 게 전부인, 뜨문뜨문 이어지는 남동생과의 관계도 스쳐간다. 나는 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오히려 이토록 서투른 걸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두고 온 여름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살갑게 표현하지도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들 말이다. <두고 온 여름>은 그런 서툴고 미완성인 관계들도 괜찮다고, 그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라고 다독여준다. 기하와 재하가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서로의 삶 어딘가에서 희미한 풍경으로 남아있을 것처럼, 나의 아버지와 동생도 무뚝뚝하고 서먹한 모습 그대로 나의 가장 선명한 풍경임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온기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조용하지만 아주 깊은 파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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