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두고 온 여름>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함께 곱씹기

렌즈를 통해 본 아버지, 그리고 가족이라는 세계

by 박신영

때로는 한 권의 책이 며칠 밤을 사유의 시간으로 채우게 한다.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이 내게는 그랬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머릿속을 유영하던 문장들 사이로, 문득 십 년 전쯤 보았던 한 편의 영화가 방점처럼 떠올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두 이야기가 서로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 이 글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혈연으로 묶인 운명인가? 함께 나눈 시간의 기록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6년간 키운 아들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아버지 료타의 고뇌를 통해 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이 묵직한 질문은 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을 만나 더욱 깊고 섬세한 결로 확장된다. 두 작품은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이 보낸 한 시절의 시간을 통해, 결국 가족을 완성하는 것은 조건이 아닌 '시간'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았을 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카메라’라는 상징적 매개체다. 카메라는 본래 가족의 시간을 기록하는 따뜻한 도구지만, 두 이야기 속에서는 아버지의 서툰 사랑과 감정적 부재를 드러내는 차가운 렌즈로 작동한다. <두고 온 여름>의 아버지는 사진사다. 그는 가족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아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늘 렌즈 뒤에 서 있는 관찰자일 뿐이다. 한 번의 셔터로 순간을 박제하는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던 그가 어색한 새 가족을 담기 위해 디지털을 배우려는 모습은, 살아있는 관계의 생동감을 따라가지 못하는 그의 서툰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관계를 개선하는 대신 도구만 바꾸려는 피상적인 시도에 그친다.


그의 본질은 죽은 생명체를 찍는 행위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는 살아 움직이며 교감을 요구하는 대상보다, 숨이 멎어 완벽히 통제 가능한 피사체 앞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는 살아있는 가족을 죽은 생명체 대하듯 자신의 프레임 안에 완벽하게 담으려 하지만, 가족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생명체다. 결국 그의 카메라는 가족의 행복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안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깊은 고독과 소통의 실패를 고발하는 장치가 되고 만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카메라는 이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변주한다. 주인공 료타는 아들 게이타가 자신 몰래 찍어놓은 사진들을 발견하고서야 거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사진 속에는 소파에 잠들어 있거나 일에 지친 자신의 뒷모습만이 가득하다. 아들은 사랑하기에 그 순간들을 담았지만, 그 사진들은 료타 자신이 아들의 시간 속에서 얼마나 부재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증거다. 그는 아들이 바라본 렌즈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혈연이라는 조건보다 함께 쌓아온 6년의 시간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깨닫는다.


결국 두 아버지는 렌즈를 통해 자신들의 실패를 마주한다. 한 명은 렌즈 뒤에 숨어 가족의 일부가 되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렌즈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야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는 두 작품이 공유하는 깊은 통찰이다. 가족은 완벽한 구도 안에 박제된 사진 한 장이 아니다.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고, 때로는 부재의 순간마저 기록되는 필름롤 그 자체에 가깝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족을 이루는가. 료타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에게 달려가며 비로소 진짜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처럼, <두고 온 여름>의 기하와 재하가 십수 년 후 서로를 원망 없이 놓아주는 순간처럼, 가족은 어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다. 서툴고 어색했더라도 함께 보낸 시간, 서로를 향했던 서툰 시선, 마음속에 희미한 풍경으로 남은 기억들이 혈연이라는 증명서보다 더 강력하게 관계를 직조한다. 두 작품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프레임은 무엇을 담고 있느냐고. 그리고 그 프레임의 밖에 서성이고 있지는 않느냐고 말이다. 책장을 덮고 스크린이 어두워진 뒤에도, 이 아프고도 다정한 질문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의 첫 번째 독서 후기는 아래 링크로

https://brunch.co.kr/@sypark11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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