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배 Oct 08. 2019

어째서 이런 비정상을 모두가 견디는 거지?   

2018년 1월, 여러 일들을 거친 나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백수가 됐다.


2009년 3월 첫 회사에 입사한 이후 9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동안 이직을 밥 먹듯 반복했음에도 금요일 퇴사, 월요일 입사의 스케줄을 따랐던 나다. 어딘가 소속된 곳이 없다는 느낌,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은 내게 낯선 감정이었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는 엄마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이 싫지 않은 눈치다. 잠에서 깨기도 전에 나가 저녁 먹을 시간에야 돌아오는 엄마를, 과연 엄마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던 건지 헷갈리던 차였다. 아이와의 시간은, 나 자신에게도 참 많이 고팠던 시간이었다. 나는 내내 아이를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하루를 보냈다.


온종일 육아만 한 것은 아니었다. 퇴사를 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있었다. 홈쇼핑 채널에서 제작하는 패션 프로그램 MC로 발탁돼 2주에 한번 정도 촬영을 나갔다. 과거 같이 일했던 대표님의 소규모 언론사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내가 놓아버리고 만 나의 일이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즈음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구나  


난생처음 출퇴근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니, 내가 어쩌면 회사라는 곳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차곡차곡 차올랐다. 그러면서 우스웠다.

아니, 그 사실을 9년 차가 된 이제야 깨달았어?



좀 더 일찍 사표를 쓰고 회사 밖으로 나와볼걸. 내게 또 다른 기회들이 주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난 어쩌면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에 나를 껴맞추려고 애써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회사가 삶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데 젊은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좁은 세상에 갇혀 살았던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물론 불안함도 있었다.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아이도 있는 젊은 부부에게 월급이 반토막 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기는 했다. 그 불안함에 결국은 기고를 하던 언론사에 두어 달 뒤 출근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나의 백수기간은 시한부였다. 하지만 겨우 두 달의 시간은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기엔 충분했다.


매일매일 출퇴근에만
두 시간이 넘게 소요되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 시간만큼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은 문득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둘 다 굳이 회사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면 말이야
아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일만 하잖아.
하루 24시간 중 일 때문에
소비되는 시간이 절반이라니
이런 삶이 제대로인게 맞긴 한 걸까?


한 시간 거리 직장에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8시 전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7시 전에는 일어나 준비를 시작한다. 퇴근시간은 오후 6시. 정시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오후 7시.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총 12시간, 하루의 절반은 일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절반의 하루를 몽땅 날리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 후딱 가버리는 2시간 가량이 지나면 이제 막 얼굴을 마주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재워야 한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없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삶이긴 한 걸까?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출산율이 떨어졌다며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들 야단이면서 정작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3개월의 출산휴가도 어마어마한 은혜라도 되는 양 갚아야 한다고들 하는 마당에 1년 육아휴직이라도 쓰고 나면 그야말로 죄인이 되는 것이 워킹맘들의 살벌한 일상이다.


물론 공공보육의 정책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정답일까? 3개월짜리 영아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갓 돌을 지난,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를 10시간 넘게 어린이집에 넣어두는 것이?


내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가 이런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 끙끙거리는 것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 된다.


내가 무슨 일확천금을 벌려고
내 아이 하나 지켜내지도 못하면서 살아야 하나.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죄책감만 가득 안은 너덜거리는 심장으로 하루를 살아내는데, 여기에 누군가들은 꼭 불을 지피고 만다.


"아니, 직장에서는 애 엄마 티 좀 안내면 안 되는 거야? 무슨 회식은 매번 빠지려고만 해?"

"엄마라는 사람이 매번 야근하고 회식하고 이럴 거면 애는 왜 낳은 거야?너무 이기적인거 아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코너에 몰린 엄마들. 실은 일과 육아를 제대로 해내기 힘든 환경 속에 처해 있는데도 이를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의 책임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고 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삶을 모두가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차오르곤 했다. 결국  삶의 정상화는 회사로부터의 해방에서 작된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언젠가는 회사들도 생각이 바뀌게 되겠지. 유연근무제가 확대되고, 아빠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도 점점 늘어나게 되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처한 2019년의 현실은 여전히 애들은 저절로 크는 줄 알고 출산휴가 3개월이 어마어마한 혜택이라고 생각하는 그놈의 본부장, 부장, 이사들이 회사에 -그것도 최종 결정권자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 속에 하루아침에 민폐덩어리로 전락하게 된 나는 치졸한 사내 정치의 말단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점점 세상은 좋아지고 있어'라는 순진한 낙관만을 가지고 하루를 버틸 수 없는 이유였다.


이제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놈의 '회사' 밖을 나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새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9호선의 전쟁통 같은 지하철 안에서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글. Sophia Bae


인스타그램 그리고 유튜브 도 운영합니다

(클릭하면 가실 수 있어요!)








이전 10화 뒤늦게 나는 내가 망가진 것을 알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