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 나는 모성에 대한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육아에 지친 여성들의 한숨 속에는 늘 '모성은 학습되는 것일 뿐,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성이 탑재되어 있지는 않다'는 넋두리들이 그득했다. 전적으로 동의했다.
임신을 한 뒤에도 모성을 느낄 일은 그닥 없었다. 부른 배를 보면 누구나 흔히 '태교 잘하고 있냐'라고 묻곤 하지만, 정작 나는 아이의 태명을 부르며 배를 쓰다듬는 일조차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출산하던 날 역시도 오로지 진통에 대한 공포만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반전은 초음파로만 만났던 아이를 실물로 접한 바로 그 순간에 찾아왔다.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이렇게 작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초소형 인간'이 내 품을 파고들기 위해 고갯짓을 한 그 순간, 가슴에 몽클 모성이 안착됐다. 아가들의 태생적인 귀여움은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라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끌어안아 살결을 부비며 하루 24시간을 보내도 부족할 것만 같은 마음. 태어나 누구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이렇게 빨리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다니
물론 모든 엄마들이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을 느끼지는 않는다. 어떤 엄마들은 출산 이후의 통증이나 수면 박탈의 신생아 육아를 거치고 난 다음에야 모성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 모성이 인간의 본능이란 말,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평생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정의에 나도 모르게 수긍하고 말았다. 그러나 새로운 깨달음이 일었다고 해서, 모성이란 이름 아래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문화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엄마들의 모성 반발심리는 모성 그 자체가 아닌 모성을 빌미로 여성을 희생시키는 문화에 대한 반발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여전히 많은 엄마들이 이제 갓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모성을 즐길 새도 없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희생할 것을 강요받곤 한다. 여기에 내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이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서로 동등하게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대부분 엄마의 몫으로 남겨진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난 뒤, 기관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전적으로 엄마의 역할. 아이가 아플 때 회사에 휴가를 내야만 하는 것도 대부분 엄마들의 담당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더 부조리한 대목은 가정 내에서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엄마의 역할에 소홀해질 수 없으면서, 일터에서는 모성을 티내는 것이 무능력 해보인다는 압박을 받는 것이다. 과거의 전업주부들이 모성이란 미명 아래 가사노동과 육아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희생을 요구당했다면(물론 이는 지금도 해당되는 사안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일하는 엄마들은 모성의 강요와 침해가 뻔뻔하게도 혼재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모순적인 것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 역시도 모성의 침해에 가담하는 데 있어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여성들 마저도 (대다수의 남성들처럼) 일하는 엄마들이 직장에서 걸리적거리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가 쓴 책 '타임 푸어'에는 뉴욕에서 가족정책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디나 백스트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과거 페미니스트 법률단체에서 일을 했지만 도리어 페미니스트들이 엄마의 재택근무를 허락하지 않거나 출산휴가를 연장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그들은 일하는 엄마를 위한 정책들이 여성운동에 해가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뀌어야 할 건 법률과 직장과 구시대적인 가족정책이잖아요."
디나 백스트의 이 말에 내가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조직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구성원들은 일하는 엄마의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남성 중심적인 구습과 악습에 대한 변화를 말하기보다는 엄마들의 도태나 탈락을 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육아휴직이나 쓰지 그래?"라는 C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였고, 출산과 육아를 경험했음에도 출산 직후까지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직장 여성의 미덕처럼 말하거나, 아이 엄마임을 결코 티 내지 않고 일하는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후배들에게 이를 강요하는 선배들 역시도 그런 인식에 지배당한 사람들이었다.
가끔 후배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것은,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더라도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멍청한 선택이 되고 말겠지. 아니, 어쩌면 비혼과 딩크를 선언하는 지금의 20대들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글. Sophia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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