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는 입사 초기 아직 서툰 업무를 제 때 마무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야근을 했다. 그때마다 야근 계획을 상사에 꼭 보고 해야만 했는데, 바로 그 이후 벌어진 일이 D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의 상사는 노조를 찾아가 D가 어떻게 하면 초과근무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인지 상담한 것이다.
관리직들이 직원 개개인의 정시퇴근을 위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 나서는 모습.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D는 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일이란 그저 삶의 일부분이에요. 일이 내 자아실현의 수단이 된다거나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진 않아요. 그런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았어요.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살아온 내게는 D의 그 말 역시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D의 말을 듣고서야 다시금 생각해본다.
일이 정말 내 자아를 실현해주고 있는 걸까?
한 때는 그렇게 믿었다. 한창 일에 파묻혀 살았던 시절. 일과 일 외의 삶의 경계가 거의 없었던 시절에는 일이 곧 삶의 원동력이고 목표였다. 당연히 일을 통해 내 자신의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남들에게 나를 설명할 때도 직업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일(직업)이 곧 나고, 내가 곧 일(직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 외의 삶에서 내가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새로운 자아가 싫지 않았기 때문에, 비로소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을 얻자마자 회사가 나라는 존재를 가치가 떨어진 노동력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일만 하거나 혹은 회사를 떠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내몰렸다.마치 일과 그 외의 삶 모두를 움켜쥐는 것은 엄청난 탐욕이라도 된다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은 꼭 나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또 임신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의 이야기인 것만도 아니다.
근면성실이 민족 최대의 장기라 칭송받는 이 땅의 일터에서 일만 하며 살아가다 돌연 삶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모두 일을 하기 위해 인생을 내던지는 무모한 열의는 칭송을 받지만 일 바깥에서의 삶을 위한 열정은 사치인 세상에서 감히 회사 밖 삶을 탐한 이들이다.
E는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해10년 넘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 덕에 동기들에 비해 승진도 빨랐다. 남들의 시선에 적당히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E였지만, 어느 날 돌연 휴직을 하고 지방으로 떠났다. 그는 이대로 일만 하다가는 우울증에 걸려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자신의 삶이 어디에 놓여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그는 휴직 이후에는 남몰래 꿈꿨던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하긴 하지만, 아직은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E. 그는 스킨스쿠버 강사가 돼 어느 정도의 소득이 생기면 퇴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F 역시 10년 넘게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들과 제주도로 떠났다. 과거 평일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었고 주말 출근도 허다했던 그는 아이가 있었지만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 어느 날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버렸다.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F는 "이제야 다시 일 할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과거처럼 일만 하며 살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쉬는 동안 내 자신 안에 나도 모르게 늘 머물렀던 분노가 사라졌는데, 다시 예전처럼 일만 한다면 또다시 그 모습을 반복하게 될까 두렵다. 무엇보다 이제 회복되기 시작한 아이와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되는 것도 두렵다"라고 말했다.
E와 F는 한 때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로지 일로만 꾸려진 삶이 결국 그들의 인생 어느 한 귀퉁이를 망가뜨리고 만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자아실현도 없었다. 이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했다. 그것이 망가진 삶을 복구하는 방법의 시작이니까. 그러기 위해 그들은 회사를 나와버렸다.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일을 하면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일텐데 왜 굳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을까.
두 사람에겐 정시퇴근을 위해 노조와 상의를 해주는 상사가 없었고 그들이 수년 동안 헌신해 온 회사에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직문화와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흔히 조직의 허리라 표현되는 30대 남성인(그렇다. 이들은 30대 남성이다!) E와 F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을 줄이고 스킨스쿠버를 배워보겠다거나 아이와 더 시간을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라면 어땠을까. 당장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거나 스스로 앞으로는 모든 승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꾸준히 퇴사 콘텐츠가 유행이었다. 우리 사회곳곳에 E,F,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