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하루는 아직 100일도 안 된 둘째의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로 시작됐다. 태어나 한 달부터 통잠을 잔 기특한 녀석이지만, 새벽 5시 무렵에는 꼭 우유를 먹어야 하기에 눈을 비비며 분유를 타오는 것으로 보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잠결에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다시 아이를 조심스레 내 왼쪽 아기침대에 누인다. 내 오른쪽에는 첫째가 곤히 잠이 들어있다. 나는 아이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두 볼에 진한 뽀뽀를 해주고는 잠시 얕은 잠에 빠진다.
오전 7시 둘째는 또 한 번 끙끙거리며 우유를 찾는다. 나는 2시간 전의 행동들을 다시 반복하며, 이번에는 잠에서 확실히 깬다. 다른 방에서 밤을 보낸 남편이 일어나 출근 준비하는 소리가 거실과 욕실에서 바스락거린다. 남편은 출근 전 우리 방 문을 살짝 열어 나와는 눈인사를 아직 잠에 빠진 아이들에게는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집을 나선다.
둘째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나면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남는다. 보통 침대 곳곳에 쑤셔 넣은 책들을 꺼내 읽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첫 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엄마를 찾는다. 어려서 엄마와 자주 떨어져 있어 엄마에 대한 애착보다 할머니에 대한 애착이 더 강했던 첫째이지만 동생이 태어나고는 부쩍 엄마를 찾는 횟수가 늘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엄마가 옆에 없으면 서럽게 우는 날들도 더러 있다.
엄마 어디 안가. 가게 되면 꼭 간다고 미리 말하고 갈게. 걱정하지 마.
첫째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그때까지 방긋거리며 홀로 시간을 보낸 둘째를 끌어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갓 옹알이를 시작한 둘째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엄마와 단 둘의 시간 동안 여러 번의 미소와 알 수 없는 옹알이로 엄마의 가슴을 녹인다. 10분 정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둘째 아이 목욕을 마치고 수유를 한다. 그러면 다시 스르륵 잠에 빠지는 순하디 순한 둘째다.
나의 출근은 그때 시작된다. 빨래와 설거지 등 간단한 집안일을 하는 동안 커피를 내린다. 식탁에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며 나의 글을 쓴다. 내 이런 삶과 엄마가 된 이후 치른 여러 인생의 곡절들을 오늘도 써 내려간다. 가끔은 누군가가 '같은 엄마의 삶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에 나 역시 용기를 얻게 된다'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 작은 응원들이 내 하루를 빛나게 해 준다.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간간이 이런저런 제안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과연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볼륨으로 언제부터 해볼 수 있는지 조율해본다.
오후가 되면 긴 낮잠에서 깨어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오늘도 엄마를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준다. 아이 곁에서 요가를 하며 내 몸의 찌뿌드드함을 덜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서둘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마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어머니께 잠시 맡기고 어린이집에 다녀온 첫째와는 놀이터로 달려 나간다. 함께 개미를 관찰하고 풀과 꽃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놀이터의 기구들 보다는 흙을 손으로 만지는 놀이를 좋아하는 첫째는 오늘도 공사장 놀이를 하자며 엄마의 옷을 잡아 끈다.
대게 요즘 내가 보내는 나의 일상들이다. 단조롭지만 풍족한 하루들이 2019년 나의 가을을 채운다. 물론 이런 날들이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 같다. 올 겨울 부터는 조금씩 일을 늘려볼 계획이다. 새로운 공부도 할 생각이고 내 수업도 시작해볼 작정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두달 뒤로 미뤄둔 일들도 있다. 조금씩 차근차근 진행시켜보려 한다.
다시 내 일을 한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역시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일을 시작할 마음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어쩌지'라는 걱정은 덜하게 된다. 갑작스럽지 않게 서서히 조금씩 내가 일하는 시간들을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맞춰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첫째 출산 이후와는 너무나 달라진 삶이다. 첫째는 늘 당연했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 절반 이상 사라져 버린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곁에 더 머물겠다는 당연한 마음은 늘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날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한 두 달 뒤에 나의 하루는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를 나 스스로 주도한다.
판타지처럼 허망하게 들렸던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말로만 모성 판타지를 들먹일 것이 아니라 아이와 엄마의 애착을 존중하며 모성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특히 그놈의 회사!)에 늘어나게 된다면 이런 삶을 보다 많은 이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 삶이 전적으로 옳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아이와의 시간보다 일에서 얻게 되는 자기만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도 존중한다. 다만,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를 스스로 주도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더 행복하다는 믿음은 확실하다.
회사에 속해 있을 때의 나는 당연하게 하루의 절반을 끌려다녔고 그러면서도 늘 누군가들에게 미안해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향해 화가 나 있어야 했다. 그 삶에 종지부를 찍은 지금, 나는 당연히 행복할 밖이다.
글. Sophia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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