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의 세상이 바뀌었다.

by 유이배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많은 이들이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 아깝지 않나요?


당연히 아깝다. 내 젊은 날의 열정이 명료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누구보다 아쉽고 아까운 것이 나 자신이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둔 것 자체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회사에 더 남아있다고 해서 기자로서 꾼 꿈과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던 마음들이 지켜졌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지영 씨, 내가 부러워?"

"네. 팀장님, 멋있어요. 저도 팀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난 엄마로도 아내로도 그리고 딸로도 함량 미달인데 이런 모습이 좋아 보여?"


주인공 김지영과 김지영이 아이를 낳기 전까지 다니던 회사의 워킹맘 김 팀장이 주고받은 대사다. 우리가 모두 잘 알다시피 김지영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고 있고, 쳇바퀴 도는 듯 갇혀 버린 일상과 자신을 향한 부당한 시선들로 인해 우울증을 얻게 된 인물이다.


그러나 김지영이 복직에 성공했다 한들 그녀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김지영의 상사, 김 팀장의 모습은 어땠는지 돌아보자. 가정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유지해 낸 커리어가 아직 미혼인 김지영의 눈에는 멋있어 보일지언정, 김 팀장의 하루가 '자아실현을 이뤄낸 삶'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악착같이 끌고 온 커리어 안에서도 그녀를 엄마로서 실패한 여자라 손가락질하는 무리들이 있고, 팀장 이상의 진급에도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 김 팀장 역시도 김지영만큼이나 흔한 오늘의 우리들이다.


20대의 나는 오만하게도 내가 김 팀장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새 사라지고만 여자 선배들의 빈자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채 30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직이 여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불과 10년 만에 나는 다시 진로 고민을 해야 했다.


1980년대생, 우리들의 삶은 마치 놀이공원의 허상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꿈꾸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나이를 먹고 나면 엄마세대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직장과 가정을 오가는 엄마들의 마음에는 늘 전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 전쟁 같은 하루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대다수 직장에서 마흔 넘은 여자 선배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얼마 남지 않은 선배들의 다수는 중간관리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3.6%. 500대 기업에 남은 여성 임원의 비율이 고작 3.6%다. 내가 속했던 500대 기업도 아닌 기업에서야 현실은 더 말도 못 한다.


실은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한 뒤 더 이상 과거의 나처럼 온종일 일에만 몰두할 수 없었을 때, 스스로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제 나는 정말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일에 100% 헌신할 수 없는 자신에 가장 먼저 적응하지 못한 것은 실은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이 회사가 나를 그런 주장을 펼치는 동료들과 동등하게 대접해주고 심지어 65세 정년까지도 보장해준다 한들, 더 이상 과거처럼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대 중반에 취업을 해 정년까지 40년 동안 오로지 일에만 헌신하는 삶이 무엇을 놓치게 하는지를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세대로부터 배울 수 있지 않았나. 남자와 여자를 떠나 누구라도 오로지 일만 하는 삶을 수십 년 동안 유지하기란 어렵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서라도 일에만 헌신할 수 있는 노동자들만이 높은 평가를 받는 회사의 문화 자체에 대해서도 우리는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어느 회사에 취직한 한국인이 있었다. 그는 '한민족의 근면 성실한 모습'으로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한국 회사에서처럼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고 살았다고 한다. 워라밸을 확실히 지키는 다른 유럽 직원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고, 이대로라면 금세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찾아온 관리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일하는 방식이
다른 직원에게 압박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우리가 오랜 시간 이뤄낸 노동문화가
당신으로 인해 망쳐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속했던 조직에는 저런 상사가 없었기에 나는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단순하고 당연한 소망이 욕심이 되는 현실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내 자아실현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했고,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전쟁을 기꺼이 치르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지 못한 채 도망치고만 비겁한 선배 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겪은 숱한 불합리들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전쟁의 끝에 바뀐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의 생각과 내 삶의 방식과 나의 하루들이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바뀐 탓에 나를 둘러싼 작은 세상도 바뀔 수 있었다.


오늘의 나는 이쯤에서 만족하련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1984년생인 내가, 일하는 엄마인 내가, 품을 수 있는 최대치의 소망을 실현해낸 것만 같다.


그러나 2016년생인 내 아들의 삶, 그리고 2019년생인 내 딸의 삶은 부디 나의 것과 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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