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존재가 돼버리면서 나도 모르게 늘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어느 날, 친한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여느 때와 같이 불평을 토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죠.
선배, 그런 일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에요. 이제 그만 좀 이야기하세요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그 뒤에 뭐라고 반박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 억울하다는 듯한 뉘앙스로 몇 마디를 더 던졌던 것 같아요. 그 후배는 "이제 그만 좀 하라"며 여전히 면박을 줬고요.
누구나 다 겪는 일.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일들. 그런 일들에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내가 모자라다는 못난 결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씁쓸한 맛을 되새기며 그날 이후로는 웬만해서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유산기가 있다고 호소해도 배려는커녕 큰 소리로 면박주기 바빴던 팀장
출산휴가 처리해주는 것이 귀찮아 꽥 소리를 지르며 짜증 내는 인사팀 차장
육아휴직이나 쓰고 사라지라는 동료
그리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수명 연장의 꿈을 꾸는 모든 임원들의 방관과
이제는 지겨우니 그만 좀 하라는 후배
자그마치 1년이란 시간 안에 내가 경험한 흔한 이야기들. 후배의 말은 꽤나 서운했지만 그의 말도 맞는 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흔히 당할 수 있는 일들이니 쿨하게 넘기라는 그의 말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내가 겪은 일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은 한두 번쯤이야 이해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반복하면 상대를 지치게 만들 뿐이니까요.
물론 선배들이 내게 준 상처보다 후배의 그 한 마디가 훨씬 더 아프게 다가오긴 했어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거든요. 나를 괴롭히고 상처 줬던 선배들은 적어도 회사에서 권력이라도 있는 존재들인데, 그저 후배에게 '그만 좀 하라'는 면박이나 듣는 내 신세라니. 이 씁쓸한 뒷맛에 한참 빠져나오질 못하며 우울해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차라리 나도 후배들 괴롭히며 성과 가로채는 그런 선배가 됐어야 하는 것이 맞나. 후배들이랑 사소하게 속 털어놓는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괜히 우습게 보였나 봐'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며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고, 또 다른 날에는 '아무리 그래도 내가 겪은 일들을 본인이 겪지 않아 놓고는 흔한 일이라 쉽게 치부하다니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라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죠. 스스로에게 화를 내거나 혹은 세상에게 화를 내거나, 둘 모두 결국은 분노였지만 분노는 나 자신을 갉아먹기만 할 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 글을 본 누군가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었을 때의 위로들로 나는 차츰차츰 분노 속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나은 상태가 되면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골몰하지 않게 됐어요. 글이 나를 치유했습니다.
누군가를 낫게 하는 것은 결국은 공감입니다. 누군가 내가 처한 상황에 공감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상처는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어느 날 문득 사라진 선배들을 당연하게 생각한 내 젊은 날의 오만함을 뒤늦게서야 사과합니다. 사라진 그녀들에게도 나와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텐데, 부족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나의 글을 보고 나를 위로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나는 빚을 졌습니다. 그 감사의 빚을 발판으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씩씩하게 한 걸음씩 더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