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였던 아이에게 쓴 첫 편지를 육아 중 가끔 들여다 본다
꿀이의 존재를 알게 된 지난 3월 부터 예정일이 얼마 안 남은 11월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병원에서 꿀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던 순간 젤리곰 같은 귀여운 꿀이를 처음 본 순간
입체 초음파로 꿀이의 뒷모습을 확인한 순간 꿀이가 첫 태동을 한 순간
그리고 결혼하고 아직 낯선 출근길에 꿀이가 함께 한 순간들
이제 이 모든 순간들은 엄마와 아빠의 추억으로 남게 되고
꿀이는 엄마 몸 밖으로 나와 꿀이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게 될거야
꿀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가 다짐한 것이 있다면 절대 꿀이한테 바라지 말자라는 점이야
특히 부모라는 이름으로 평생 보호해줘야 할 아이에게 효도를 바라거나 강요하지 말자
내 선택으로 내가 낳은 아이에게 짐을 씌우지 말자 하는 점
그저 꿀이가 건강하고 맑고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자
엄마가 너 낳을 때 고생 많이 했으니 이 다음에 커서 갚아야 해
아빠가 너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 이 다음에 커서 다 갚아야 돼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자 라는 점이야
그러면서도 아주 가끔은
'우리 아기는 태어나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을거야' '우리 아기는 누구보다 순한 아기일거야' 라며
스물스물 꿀이에게 바라는 점이 생기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나 보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 잊지 않고 꿀이의 인생에서 가장 든든하고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엄마도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거고 아빠도 처음으로 아빠가 되는 만큼 많이 부족하고 서툴겠지만
우리의 첫 아들, 꿀아 앞으로 네가 살아갈 인생을 가장 큰 마음으로 지켜봐주고 응원해줄게
엄마와 아빠에게 축복같은 존재, 꿀이는 어떤 장난꾸러기가 될까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기대가 돼
얼른 나오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단다
FROM.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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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0년대생으로, 그 시절의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러했듯 부모님의 기대 속에 자랐고 기대에 부응하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좋은 학교를 가려고 노력했고 이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직업을 갖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대기업이 좋은 직장일까? 전문직일까? 공무원, 교사?
그런 고민 속에 방황하다 취업의 시기를 놓치게 됐다. 우연히 연예부 기자에 발을 들이면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고 했지만 벌이는 적었고 그러니 효도의 길과도 점점 멀어지게 됐다.
자꾸만 무언가를 요구하는 엄마의 눈빛이 부담이 되던 시절부터 나는 내 아기에게만큼은 자식이 해야 할 도리라는 이름으로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결심을 자주 하곤 했었다. 태아시절의 꿀이에게 쓴 편지는 그런 마음을 담았던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 제법 점점 인간의 형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자주 결심하는 것이
기대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기대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 이 아이를 사랑하자. 오늘의 아이를 사랑하자라는 점.
과연 이것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부디 아이에게 좋은 지지자가 될 수 있기를 늘 기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