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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Dec 28. 2017

결국 나는 퇴사를 하고 말았다

퇴사 트라우마에 대한 기록  



성탄을 앞두고 나는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는 마지막까지 예의가 없었지만, 나는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애썼다.


회사를 관두고 나서 고질적인 불면증이 사라졌다. 얼굴빛이 좋아졌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 아이도 엄마를 더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게 됐다. 그렇지만 안온한 일상의 빛깔 하나하나 만끽하며 살다가도 문득 불거져 나오는 트라우마 조각들이 있다.


나는 여전히 울컥거렸다.


예컨대, 출산휴가를 쓰기 위해 절차를 물어보러 담당부서에 갔더니 “애 낳지도 않고 무슨 휴가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라며 짜증을 내던 담당자가 떠올랐다. 당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머리가 띵-하며 괜스레 죄인이 된 것 같아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던 배부른 임산부는 그 담당자의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만 빤히 쳐다보았다. '너도 애 아빠잖아'라는 눈빛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대의 항의였다.


누군가는 그럴 수록 회사에서 더 강해져서 그 사람을 밟아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사내 정치 따위를 해서 올라가봐야 이 팀장, 백 국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동기 부여가 안됐다. 내 인생의 목표가 출산휴가를 쓴다고 할 때 고성을 지른 담당자에게 복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정치를 하지 않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일종의 연대였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나와 손을 잡아 항의하고자 하지 않았다. 순간만 참으면 또 다음 순간에는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또 정치를 하지 않으니 누군가는 나를 방해물로 간주하고 무조건 밀어버리려 했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무장한 한 40대의 여자 팀장은 "애 엄마면 육아휴직 쓰면 되겠네. 육아휴직 왜 안써? 너도 써!" 라며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녀 혀끝에 마음대로 내뱉은 말에 결국 나는 사표를 썼다. 사표를 쓰기 전에 회사의 선배들에게 상의를 했는데, 그들이 나를 위안하는 논리는 "조금만 참아. 쟤가 저러는 것도 한 순간이야" 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회사에서도 저런 말을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변하면, "네가 너무 예민해" 라는 말이 돌아왔다.

 

"왜 그렇게 싸우려고만 들어."


단 한번도 싸워보지 못한 내게 돌아온 말이 "싸우려고 하지마"였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구역질 나는 정치 싸움은 여전하면서 말이다. 그저 나는 부당한 대우를 부당하다 말한 것 뿐이었는데, 회사에서 겉도는 사람이 돼버렸다.


허무했다. 내가 1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몸 담은 업에서 고작 내가 얻은 성과가 이것이라니.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는 한국의 조직문화. 그런 아픈 기억들 때문에 나는 조직이 신물이 났다. 나를 상처주고 짓밟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조직들.


엄마가 되면서 새롭게 느낀 사회의 차가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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