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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Nov 19. 2017

어째서 나는 그토록 무기력해지고 말았나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젊은 친구들을 본 소회



오늘은 퇴사학교의 지식창업론 수업을 듣고 온 날이다. 그만큼 요즘의 나는 퇴사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동안 이직을 많이 했기에 나는 퇴사 경험도 많지만, 이번 퇴사는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더 이상 의미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쳇바퀴 돌듯 반복해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사학교라는 네이밍이 마음에 들어 무턱대고 신청을 하게 됐다. 수업 전날 갑작스럽게 들어간 촬영 일정 탓에 무려 18시간 근무의 강행군이 있었던터라 마지막까지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남편의 등쌀에 못이겨 먼 길을 떠났다. (내가 무력해지니 남편의 잔소리가 심해진다....남편은 자꾸만 내 등을 떠밀고 뭐라도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듣게된 퇴사학교의 수업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요약하자면 <지식창업의 종착점이 미디어>였다.


미디어에 온갖 회의를 느끼는 미디어 종사자로서 미디어 외부에서 미디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나름 신선하게 와닿긴 했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그 한계를 명확히 아는 사람으로서 깊이감 있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극이 된 부분도 있다. 바로 직장 생활 4~5년차들의 풋풋한 열정이었다. 나도 이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려 업계 외 사람들을 자주 만나보지도 못했고, 지금 속한 직장의 차별과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적 무기력, 우울감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는데 여기 모인 이들은 다들 무언가 해보겠노라는, 아직 잘 모르지만 찾아보겠노라는, 내 업에서 또 다른 것을 창조해보겠노라는나는 내 상사처럼은 결코 되지 않으리라는 그 무모한 열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니 나 역시도 5년차 쯤에는 내가 이 업계에서 무언가를 이룩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는 점이다. 나도 내 선배들이랑은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한 때는 제대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누군가는 연예 미디어는 그저 그런 나부랭이일 것이라 단정 지어 말했지만 나는 대중 문화를 비평하고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응원하고 그 와중에 몇 안되는 스승들을 발견할 때 벅차오르고 내 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 일이 정말로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좋은 기회들이 나를 찾아주었다. 외고를 쓰고 방송을 하고 라디오를 하며 벌어들이는 수익이 월급을 넘어설 때도 있었다. 수익이라는 보상까지 찾아오면서 이대로라면 내 인생은 탄탄할 것이라는. 이 쯤이면 나는 제법 이룬 것이 많은 인생이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꽤 괜찮아보인 날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너무 없다는 생각이 주는 답답함으로 내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지금의 직장으로 오면서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 과정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선배들 틈바구니에 있게 됐다. 그들은 정치적 이익 다툼 속에 나같은 하잘 것 없는 부속품들은 체스판 말처럼 마음대로 여기저기 갖다 끼우기 시작했다.


체질적으로 나는 그런 정치를 환멸해서 그 속에서 이겨서 승자가 되고픈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방관했지만 내 주변이 죄다 그런 환경이고 보니 결국 나는 그 안에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는 누군가의 생명 앞에서도 정치질에 열중인 어느 한 사람의 망가짐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실력과 노력, 소양이 없는 상태에서 이리저리 저울질만 한창인 후배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나는 내 주변에 열성적인 후배와 참된 선배들, 인간적으로 아껴주는 업계의 동료들이 전하는 지지마저 점점 외면하게 됐다.  


늘 회의적이고, 이번에도 또 안될거야라는 부정이 앞서고, 결국에는 퇴사학교에 기웃거리게 되고 말았다.


퇴사는 내 스스로 나를 재건하겠다는 결심이다. 부서지고 망가진 직업인의 자아를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 2017년 말미 내가 하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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