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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Mar 15. 2020

마침내 코로나에서 해방된 느긋한 저녁

횡성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오후 3시쯤이었다. 평소라면 서울에서 2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이날은 점심까지 다 챙겨 먹은 느즈막한 오후에 출발했음에도 2시간도 채 안돼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물론 일요일 오후라는 시간적 특성을 고려해봐도 양옆으로 한산한 고속도로는 코로나의 위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또 팔당으로 가는 길은 꽉 막혀있어 격리를 참지 못하고 서울 근교로 뛰쳐나가는 이들이 제법 많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됐든 그 무엇을 봐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떠올리게 된 꼴이라니. 지난 한 달 동안 이놈의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을 야무지게 갉아먹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남편의 집 고르는 안목은 믿을 만했다. 신혼집을 고를 때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러니 에어비앤비 예약쯤이야 내 결재 따위 없어도 충분히 훌륭할 것이다. 예외 없이 이번에도 그가 고른 집은 나의 감탄을 자아냈다.


집 바로 앞은 횡성호가 자리 잡았다. 횡성호의 존재조차 이날 처음 알았는데, 이 호수의 규모가 이토록 웅장하다는 것은 당연히 몰랐다. 나는 호수의 넘실거리는 규모에 놀라고 또 놀라워했다. 이제 5세가 된 우리의 첫아들은 호수와 분수가 헷갈렸는지 '왜 물이 튀어나오지 않냐'라며 불만을 토했지만, 저 멀리 보이는 오리 떼와 그토록 좋아하는 흙놀이를 할 수 있는 정원을 보고는 금세 깨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2세라곤 하지만 겨우 8개월에 불과한 둘째는 손에 잡히는 나뭇잎과 뜨거운 햇살을 낯설어했다. 둘째는 작년 여름에 태어나 외출이 본격적으로 가능한 100일 무렵 겨울을 맞아 대부분 실내에만 있었고 마침내 태어나 처음 봄을 맞이했지만 코로나의 습격으로 여전히 집 안이 보이는 세상의 전부였던 터다. 세상이 이토록 밝고 푸르고 신선하다니라는 표정의 아기를 본 순간 나는 또 울컥거렸다.


집 주변을 빙 둘러봐야 5분도 채 안 걸리는 작은 산책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짐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별채를 수선한 듯한 집은 침실 2개와 욕실 하나, 거실 겸 큰 방 1개 그리고 부엌이 전부인 아담한 집이었지만 우리 넷에겐 충분히 넓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거실에 자리한 LP. 비록 바늘 값만 8만 원이니 고장 내지 말라는 단단한 경고장이 기계치인 나를 주눅 들게 했지만 무엇이든 뚝딱뚝딱 고쳐내고 마는 만능 남편은 두려움 없이 LP를 작동시켜 나와 아이들의 청각을 풍요롭게 해 줬다. 우리는 나나 무스꾸리, 밥 딜런, 퀸의 선율을 완벽히 즐겼다. 처음 들은 퀸의 음악에 들떠 춤을 추는 첫째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하고, 칭얼거리다가도 음악이 들리면 귀를 솔깃 거리는 둘째의 귀여움에 미소 지었다.


나와 아이들의 하루가 이토록 완벽하게 마무리되다니.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이런 하루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안에 꾸역꾸역 채워 넣은 짐과 함께 챙긴 긴장감이 온데간데없이 흩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횡성호 기슭에 자리 잡은 외딴집에서 우리 가족은 비로소 코로나에서 해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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