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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Mar 17. 2020

코로나가 알게 해 준 행복이라니

삼시 세 끼를 모두 해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문기자로 10년을 살았다. 그중 지난 3년여는 임신, 출산, 육아를 병행한 워킹맘이었다. 그 삶도 그리 녹록지 않았지만, 집에서 세끼를 모두 해 먹는 주부의 삶도 그에 못지않게 고단하다는 것을 나는 횡성에서 깨닫는 중이었다.


첫날 저녁, 우리는 마스크와 고글로 무장한 남편이 인근 마트에서 사 온 한우와 돼지 목살 바베큐로 해결했다. 그러나 삼시 세 끼를 모두 바베큐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이곳에서도 격리는 유효하기에 다른 여행지에서처럼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었다. 사무실 근무보다 도리어 더 쪼이는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나는 "아침 하고 돌아서면 점심하고, 또 돌아서면 저녁해야 한다"던 엄마의 투덜거림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간헐적 단식 중인 남편이 아침을 버터 커피로 대신하는 것이 어찌나 고마운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남편의 커피를 만들어주고 둘째 아이의 분유를 타 먹이고는 늦잠을 자고 일어난 첫째 아이를 쫓아다니며 사과 한쪽이라도 먹이려고 애썼다. 게으른 날에는 첫째 아이에게 코코아를 만들어주고는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지'라며 죄책감 동동거렸다.


설거지와 함께 간단한 청소를 마무리하면 나는 이메일과 씨름하는 남편을 두고는 졸려하는 둘째를 안고 첫째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선다. 첫째는 자전거를 끌고 엄마를 앞질러 가고 둘째는 햇살 속에 금세 잠이 든다. 잠든 둘째를 다시 데리고 들어와 잠자리에 누이고는 "빨리 나오라"며 안달인 첫째를 데리고 다시 정원으로 나가 호수 구경도 하고 새 구경도 하고 벌레 구경도 하고는 오후를 보낸다. 여기까지 하고서는 이미 점심 먹을 무렵이다.


단식 중인 남편은 배고프다고 성화를, 둘째는 잠에서 깨서 보행기를 끌고 다니고, 첫째는 아직 더 놀고 싶다며 징징거리는 와중에 나는 서둘러 점심을 만든다. 낯선 주방에서 두세 개의 요리를 뚝딱 해내기란 쉽지 않다.


남편이 정리한 거실의 테이블에 내가 서툴게 완성한 요리를 펼쳐보니 제법 멋스럽다. 이곳의 주인장은 인스타그램 감성이 있는 이였다. 은은한 컬러감의 스퀘어 패턴 테이블에 이가 빠졌지만 사진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그릇들 속에 나의 어설픈 요리를 올려본다. 편 마늘과 올리브 오일로 볶은 파스타와 토스트, 스크램블드 에그가 점심메뉴로 자주 등장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는 남편의 남은 점심시간에 해결토록 하고 나는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린다. 큰 애는 침대방에 누워 티비 시청을 하고 작은 아이는 기는 연습을 하며 종종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입에 집어넣다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남편을 제외한 우리 셋은 또다시 바깥으로 나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활동반경을 조금씩 넓혀 가보기도 했다. 걸어서 10분을 더 가면 인적이 드문 숲도 나오는데 겨울왕국에 빠진 첫째는 그곳을 마법의 숲이라고 칭하며 정령이 산다고 말해줬다. 나는 정령은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아이들을 괴롭힌다며 겁을 줬다. 엄마의 빅픽쳐를 모르는 첫째의 얼굴에 긴장이 스민다. 코로나보다 정령이 무서울 나이가 부러울 밖이다.


산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오후 나는 첫째 간식을 내놓고 둘째를 재우고 그야말로 찰나의 휴식을 즐겨보기도 한다. 계속해서 LP는 바삐 돌아간다.


또다시 저녁이 오기 전까지 나는 매트를 펴서 요가 수련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수련이 쉽지는 않지만 찌뿌드드한 몸을 개운하게 만드는 스트레칭 정도는 해볼 만하다.


교외의 삶은 아늑함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의 삶도 나름 치열하다. 그러나 분초를 쪼개며 바삐 움직인 이곳에서의 하루에 나는 행복했다. 잠시 잠깐 내 시선이 머문 곳에 따사로운 햇살과 일몰로 넘실대는 호수가 존재했다. 서울 집에서는 늘상 칭얼거리기만 했던 아이들의 바스락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쳐 지나갔고, 8시간의 근무시간과 3시간의 출퇴근 시간으로 저녁 무렵에야 간신히 얼굴을 마주하던 남편이 내내 일상 가운데 있어줬기 때문이다.


이 망할 바이러스가 나를 행복이 넘실대는 호숫가로 데려다주었다. 살다 보면 간혹 마주하고 마는 삶의 아이러니를 또 한 번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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