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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May 10. 2020

서른일곱 요가강사가 되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게 된 것은,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그 시절 내게는 굉장한 자부심이었다. 새로운 삶을 일으켜 세워보겠다는 결연한 의지였고 인생을 전환시켜보겠노라는 담대한 용기이기도 했다.     


이 자격증으로 인해 나는 야근과 회식 없인 성장도 힘들다는 논리의 조직에서 벗어나 볼 수 있고, 치졸한 사내 정치에 가담하지 않아도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누군가를 글로 쑤셔야만 하는 직업 자체의 공격성에서 벗어나 '나마스떼~' 영혼의 안식을 강조하는 인자한 선생이 되어볼 수도 있다.


나는 지난 10년간 기자로 살았다. 한 때는 이 직업이 내게 주는 충만함이 뿌듯했다. 나름의 소명의식과 사명을 가지고 열렬히 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럴 수 없었다. 아이 엄마가 된 뒤 내 지난 열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프레임을 이겨낼 수 없었고 예전처럼 일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새로운 적성을 찾아헤맸고 2년여의 방황 끝에 찾은 내 새로운 직업이 요가강사였다.


프리랜서의 삶에는 지금의 내가 차마 알지 못하는 불안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지만 그보다는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2년 전 일기장에 털어놓은 나의 막막함 들을 떠올리면 방황하던 내 인생이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안도감까지 스몄다.      


그 한 장의 인증서가 이토록 많은 의미를 띠고 있었다.


자격증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온 날, 남편 그리고 아이와 작은 케이크를 둘러싸고 촛불을 켰다.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손뼉을 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요 작은 존재가 내 인생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켰는지 새삼 실감했다.     


내 품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널
처음 만난 날에도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었는데...     


나와 눈만 마주치면 아이 입에서는 자동반사적으로 "엄마"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가끔은 그 두 음절이 지닌 엄청난 무게감이 내 자신에게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아마 세월이 더 흐른다 해도 스스로를 엄마라 칭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엄마가 됐다는 증거들은 속속 발견된다. 길거리를 지나다 어느 아이가 "엄마!"라 외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돌아본 순간. 아이가 얼굴을 부비면 탈이라도 날까 바스락 거리는 소재의 옷은 아무리 예뻐도 돌아보지 않게 된 날들. 그 어떤 좋은 것을 봐도 아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상 속에 나는 오롯이 엄마였다. 아이를 낳은 지 고작 2년인데 그 사이 겪게 된 삶의 변화는 참으로 어마어마했다.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은 이 작은 존재 없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삶의 변화들은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을 조금은 더 성장시켰다. 오늘과 같은 결실의 날에는 성장의 기쁨을 만끽해볼 수 있지만 이날이 오기까지의 성장통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임신과 동시에 폐기물 취급을 받은 직장에서의 상처.
회사와 집을 오가며 일과 아이를 오가며 살아보겠노라 바둥거렸지만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날들의 초라함.
복직 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던 날의 패배감.     


10년 동안 몸 담았고 한 때는 누구보다 반짝이던 내 꿈을 등져야 했던 날들의 쓰라림은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 상처들에 빠져 허우적거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쓴 지금의 나는 한 뼘 두 뼘 자라있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스스로를 믿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각각의 성장통 속에 살아보기 위해 용을 쓰는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 많은 변화와 크고 작은 상처를 홀로 감당하고 있을 그녀들.     


요가 강사의 꿈을 이룬 지금, 다시 품게 되는 또 다른 꿈은 언젠가는 그런 엄마들을 위한 요가 클래스를 열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찌뿌드드한 근육을 정돈하면서 지친 영혼까지 쓰다듬을 수 있는 수업을 해보고 싶다. 내 작은 수업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고 용기를 얻게 된 엄마들이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 편이 늘 누군가들과 치졸한 싸움을 벌이고 서로를 뭉개며 버텨야 하는 회사 생활보다 더 큰 성취감을 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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