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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Apr 03. 2018

마음 속 사표를 쓰고 난 뒤



그만둘까 말까 고민한 것은 거의 2년이었는데, 사표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웬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애 엄마인데 왜 육아휴직 안써요?" "애 엄마라서 스트레스 많이 받나봐요?"라는 비하 발언을 업무 중에 쏟아냈을 때, 더 이상 이 조직에 미련이 사라졌다. 


그 이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냥 같은 여자로서, 같은 팀의 같은 직급의 그녀가 쏟아부은 말은 내게는 이 조직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버텨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일을 겪어서 내가 얻게 되는 성장은 과연 뭘까. 


한동안은 노무사와 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회사가 내게 퍼부은 폭언들, 결혼한 여자, 임신한 여자, 출산한 여자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하는 온갖 막말과 편견들을 쏟아부으며 한탄도 했었다. 


그런데 싸우는 것보다 나는 쉬고 싶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우고 폭력적인 언어들을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상식이 없는 사람들을 지워낼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 돌이 지나서 아장아장 걸음마도 제법하고 애교도 늘고 활동량도 늘어난 아가와 집을 지키는 그야말로 애 엄마가 되었다. 한 아이의 빛나는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애 엄마는 그네들이 힐난해도 되는 그런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아침에 느즈막히 아이와 뒹굴 거리다 날씨가 좋으면 나가 놀기도 하고, 산책을 하며 두런두런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들려주고, 함께 (집에서) 영화도 보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이야기도 읽고. 특별한 날엔 아이와 함께 초콜릿도 만들어보면서, 생애 첫 음식들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네들의 엄마도 그들을 이렇게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존재를 ....비아냥 거리다니!!!! 


때때로 내 속에 분노는 여전했지만, 나는 보석같은 아이로 위안을 얻었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내 인생에 일어난 더 없이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김질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충전의 시간을 거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깎아 내리는 건강하지 못한 경쟁, 조직을 위한 희생,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최고 미덕인 처세가 아닌...


나의 행복, 내 아이의 행복, 내 가족의 행복, 내 주변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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