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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Apr 10. 2018

엄마가 되고난 뒤 내가 겪는 변화들


내 나이 서른넷.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엄마가 됐음에도 나는 철 없는 사람이었다. 

나이만 먹었을 뿐 내가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가 된다는게 대체 어떤 것인지 가늠조차 못하던 내가 지금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고 있다. 


왜 우리 엄마들도 늘상 하는 말인 "애 낳아보면 다 알아" 이 말. 이 빤하고 진부하고 꼬장꼬장한 말은 사실 진리였다. 낳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들, 낳기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 낳기 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들이 지금 내 머릿 속을 휘젓고 다닌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내 아이에게 만큼은..."이라는 부모의 욕심이다. 우리 부부, 특히 내게 그 욕심은 "내 아이에게 만큼은 이런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살게 하지 말아야지"였다. 


내 아이가 나중에 회사원이 된다면 도시락을 싸다니면서 말리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치솟았다. 남편은 또 다른 이유로 이런 생각에 동의했다. 


조직에 충성하지 말거라. 조직에 순응하지 말거라.
네가 합당하다고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지켜갈 수 있는 세상에서 숨 쉬고 살아라. 


내가 아이에게 부모로서 해주고 싶은 말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 역시도 더 이상 조직에 충성도 조직에 순응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내가 합당하고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고집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치솟았다. 


그 전에 나는 조직에 굉장히 순응하는 사람이었고 시키면 하는 사람이었으며 소위 까라면 까는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품고 난 나는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좋은 게 좋은거지'하고 넘겼던 일들을 더 이상 넘기고 싶지 않아졌다. 


댓글 등에서 기레기라는 말을 접했을 때, 아이를 낳기 전 미혼일 때는 그냥 태연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혹시나 내 아이가 내가 쓴 기사를 보다 댓글에 그 단어를 접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더 이상 내 스스로가 내가 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불어 더 이상 조직에서 말하는 불합리한 일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것들을 감당하면 내 아이도 이를 감당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회사를 관두고, 연예계에서 벗어난 나는....  


그렇다면 이제 뭘 해서 먹고 살지? 엄마가 된 나는 이제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지? 

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지만, 그 고민 속에서도 머리는 개운해졌다.


절대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말자


이 생각만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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