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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May 01. 2018

"세상 일 모른다"는 말의 비겁함

"세상일 어찌될지 모른다. 절대 적을 만들지마. 나중에 저 사람이랑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몰라." 


직장 생활하면서 흔히 듣게 되는 이 말. 바로 이 말이 내부 폭로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 직장에서 당한 온갖 불합리함들로 끙끙 거리다 차마 못참겠어서 한 마디는 해야겠다, 퇴사하면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라도 해야겠다고 하면 돌아온 이 말. 


욱 하는 마음이 다스려지고 난 뒤 신고는 무슨, 그냥 넘어가버렸던 나 역시도 10년의 직장 생활 동안 '그래 좋은게 좋은거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기에 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가끔은 아쉽다. 내가 신고를 했더라면 불합리에 저항했더라면 그 조직은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아주 예전 조직에서도 말이 안되는 일이 있었다. 온갖 폭언을 일삼던 선배가 있었다. 주말에 쉬는데 별 것도 아닌 걸로 트집을 잡아서는 온갖 고성을 지르던 분노조절장애가 있던 그녀. 점심 먹다 술에 취해서는 '나 친구 만나러 가야겠어'하며 가버리던 그 이상한 선배. 


결국 그 정신 나간 선배한테 시달리다 못해 내 인생에 처음으로 1년도 못채우고 그만두게 된 회사. 당시에도 정말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나올 때 좋게 나오려고 했던 것은 나오고 나서도 찾아가서 인사도 했던 것은 그래 그놈의 세상 일 어찌 될지 몰라서 였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다르다. 그래 세상 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불합리를 뛰쳐나와 또 그 불합리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그런 사람이랑 언제 어떻게 만나고 싶지 않고 이제는 갑과 을이 아닌 관계에서 만나 당당하게 대할 것이다. 또 그의 을이 ... 되어 그런 일을 결코 당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전 직장의 국장과 팀장을 한 후배의 결혼식에서 만났다. 회사 다닐 때 내가 당한 온갖 불합리를 목격하고서도 방조하고 때로는 그 불합리를 만들던 사람들. 내가 회사를 그만뒀음에도 불구하고 "안녕하세요 국장님"하며 꾸벅 고개 숙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예의상의 목례만 전한 뒤 날 불러대는 외침을 거부하고 돌아섰다.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상대는 피할 수 있는 자유, 퇴사 이후에 찾아온 나의 소확행이었다. 


피하고 돌아섰음에도,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결심했음에도, 견디다 못해 박차고 나왔음에도

세상일 어찌 될지 몰라 그들에게 다시 고개 숙이고 싶지는 않다.


삶은, 내가 바꿀 수 있다. 아직은 그렇게 믿고 싶다. 불합리를 당하고만 있으면 당하기만 하지만, 불합리에서 벗어나 피해가면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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