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내게 모성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 엄마라는 새로운 자아의 탄생이 있기까지.....

by 유이배


열달의 시간을 거쳐(실은 정확히는 9달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우리 부부의 품에 쏙 안긴 꿀이.


나름 결혼 전부터 영양제도 챙겨 먹고 엽산도 챙겨 먹으면서 몸 관리를 했던 탓일까, 직장 내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 거렸던 나날들임에도 불구하고 꿀이는 주수에 맞게 건강하게 잘 자라줬다.


아직 '부모가 된다는 것'이 막연했던 그리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하늘을 찔렀던 예비 엄마와

공부와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했던 그러면서 임신한 와이프 대신해 집안 일도 솔선수범했던 예비 아빠는

실은 태교를 해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자라 주는 태아가 고마웠던 시간이 나의 임신 기간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 볼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위로를 받은 건 오히려 엄마와 아빠였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화가 폭발했던 어느 날, 나는 가만히 배를 쓰다듬으며

'꿀아, 오늘 엄마가 너무 우울해. 너무너무 우울하고 화가나'라고 말했더니 아가가 발로 배를 뽕 찼었다.

갑자기 웃음이 배시시 나오면서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시나브로 모성이란 낯선 개념을 체감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 속에는 '아기의 존재와 별개로 나의 인생은 중요하다, 엄마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아를 잃어서는 안 된다'라는 결심을 굳건히 굳건히 다지던 시간이기도 했다.


많은 워킹맘 선배들, 그리고 매스컴에서 다루는 엄마의 삶도 중요하다는 구호들의 영향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도 나는 내 시간을 가질 거야', '아기와는 별개로 나라는 자아를 결코 잃지 않을 거야', '아기 이야기만 하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조리원에서 아기를 본다고 버둥거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어. 오히려 조리원 직원들이 더 전문가인데 아기를 온전히 맡기고 나는 푹 쉬어야지', '요즘은 분유도 잘 나온다고 하니 꼭 모유수유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난 어리석게 모유수유만을 고집하고 모유수유 부심을 부리지는 말아야지'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난 순간 이 모든 굳건한 결심들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나는 나의 몸을 뚫고 나온 새로운 존재에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이건 마치, 사랑에 빠져 들뜬 사람의 마음이 24시간 동안 지속되는 느낌이랄까. 아기의 조그만 얼굴과 손, 발, 통통한 허벅지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고 동공이 확장되는 느낌.


(정작 아기는... 그곳이 더 편했을 텐데) 조리원 신생아실에 혼자 누워있는 아기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 아가를 안고 모자동실을 하고, 신생아에게는 흔하디 흔한 토를 했을 뿐인데 밤중 수유도 모유로 하겠다며 자처해 새벽 내내 수유 콜을 받는 내 모습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내게 '모성'이라는 것이 있다니. 새삼스러웠다.


요즘은 대게 모성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육아에서 여성의 무게감이 너무나 큰 탓도 있을테고, 여성에게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은 나는 내 선천적 모성을 실감을 넘어 절감하게 됐다. 처음 만난 우리 아기에게 내 모든 것을 다 던져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매 순간순간 불끈불끈 거렸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내게 (요즘 남들은 없다고 말하는) '선천적 모성'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랑하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나의 모성을 온전히 실감하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1. 일단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의 훌륭한 육아 파트너가 되어 주려고 (아직 까지는) 노력해주고 있다. 새로운 장비만 만나면 멘붕이 되는 나를 위해 아기띠, 유모차 등의 사용법을 본인이 숙지하고 즐기며 구태여 나에게 이걸 배우라고 강요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이 못하는 건 내가 기꺼이 해주겠다는 태도가 큰 버팀목이 되었다.


물론 우리 남편도 새벽에는 일어나지 못해 나의 발길질을 몇번 받기도 했고, 남편이 회식이라도 하고 온다치면 나는 방바닥을 긁어대며 절규하곤 했지만, 그럼에도 남편은 내게 엄마로서의 어떠한 희생도 강요하지 않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몫을 충실히 해냈다. 무엇보다 아빠가 된 사실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즐기는 모습이 내게도 행복이 됐다.


2. 시댁의 도움도 컸다.


출산 이후 다시 직장이 복귀해야 하는 나를 위해 시댁에서 아이를 기꺼이 받아주셨다. 나는 출산 후 3개월 뒤에 복귀 하게 됐는데, 그 어린 아기를 낯선 사람에게 두고 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겠다. 그런데 다행히 할머니가 아기를 하루 종일 봐주시기로 하셨고, 덕분에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만약 그 반대의 상황에 놓였더라면, 나 역시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부당함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는, 부디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모성을 가진 여성이 그 모성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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