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아이는 강하더라
전(前) 회사를 퇴사하고 3개월의 틈이 있었을 무렵, 우리는 14개월 아이와 함께 LA로 향했다. 아마 우리 부부 두 사람만 아이를 데리고 LA로 가라고 했다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시어머니 아버지도 동행하는 여행이라 '한 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LA에는 시댁 큰아버지가 사시기에 호텔을 전전하는 여행은 아니라는 점도 초보 엄마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가기 전 '아기랑 비행기', '아기랑 해외여행' 같은 키워드를 부지런히 검색하고 친구들에게도 '아기랑 미국 갈 수 있을까?'라고 여러 번 물어봤다.
'밤 비행기가 더 수월할 거예요', '병원에 들러서 꼭 기본적인 약은 처방받아 가세요'라는 실질적 조언을 해주는 이들도 있었고, '힘들어. 후회할 거야. 그냥 더 키우고 가'라고 말해주는 지인도 있었다. '그냥 가.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어'라던 호탕한 친구의 말도 잊지 못한다.
여하튼, 아이 덕분에 하나 더 늘어난 트렁크를 끌고, 또 아이를 안고 우리는 해외여행에 나섰다.
14시간의 비행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아이는 공항 가는 길, 또 공항에서 내내 컨디션이 좋았다. 그런데, 겨울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비행기는 자꾸만 딜레이가 된다. 집에 있었다면 벌써 포근한 이불에 얼굴을 비비며 엄마와 잠을 청했을 시간인데, 아가는 훤한 공항의 조명이 신기한 듯 신나게 트렁크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 아가를 바라보는 내 마음, 어딘지 불안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기와의 첫 비행은 정말 힘들었다. 잠이 들라치면 안내방송 소리가 들리거나 조명이 켜져 버리니 아이는 내내 칭얼거렸다. 좌석에 아이를 눕혔는데 평소 뒹굴거리며 자던 아기로선 성인 두 명분의 좌석도 좁았다. 그런 아기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나는 조마조마하며 뜬 눈으로 아기를 지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교대로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랬지만, 낯설고 건조한 기내 환경에 아가는 힘들어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루한 비행에도 이륙은 있었다. 미국 땅을 밟자마자 아가는 분수토를 했다.

괜히 왔나 싶었다. 그렇지만 반전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아기는 적응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추운 서울의 겨울을 지루해하던 아가는 햇살 쨍쨍한 LA의 기온을 온몸으로 즐겼다. 비행은 고됬으나, 아기가 이국을 즐기는 모습에 엄마 아빠의 마음은 마냥 달떴다.
어딜 가도 푸르르고, 다양한 동식물이 펼쳐져있으며, 아무리 뛰어다녀도 다칠 장애물이 없는 곳을 처음 만난 아기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며 엄마와 아빠를 안심시켰다.
아기는 첫 외국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LA 다운타운의 놀이터와 키즈카페에서는 인종이 다른 친구들을 보며 낯설어하다가 적응했고, 한국 바다의 거센 파도에는 기겁을 하던 아기가 말리부 비치의 잔잔한 물결은 자장가처럼 들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도시의 회색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넓디넓은 식물원에서는 분수의 물장난에 깔깔 거렸고, 박물관 안에 아가 동상을 오래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좋은 자극이 많아서였을까. 아이는 미국에서 유독 새로운 단어를 엄마에게 많이 들려줬다. 한참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카트에 앉은 아기가 '꼬!꼬!'라며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 거짓말 같이 '꽃'이 있었다. 디즈니랜드의 아기자기한 기차를 보고 '기차!'라고 가르쳐주자 단번에 발음을 따라 하기도 했다.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엄마 아빠의 마음은 두둥실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한 해외여행은 부모인 우리에게도 새로운 관점으로 그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서울의 좁은 골목길을 아이와 다닐 때 나는 늘 차에 예민했는데, 보행차 천국인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놀이터나 공원에 가도 활동반경이 조금만 넓어지면 아이가 다치거나 떨어질 위험이 있어 '가지 마, 안돼'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아무리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는 넓은 잔디 속에서는 아이와 마냥 걷고 뛰며 웃을 수 있었다.
보름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푹 잠을 잘 자주었다. 큰 칭얼거림 없이 수월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한국은 매서운 강풍으로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14개월 아기와 초보 엄마 아빠는 행복한 추억으로 한동안 봄처럼 행복해했었다.
아기와의 해외여행은 사실 많이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동선의 제약도 상당하다. 그래도 이제 막 걸음마에 익숙해진 아기 오라면 해볼 만한 기분 좋은 모험일 것 같다. 한없이 연약할 것만 같은 아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조금 낯선 환경 속에서도 꼬박 제 몫 이상의 성장을 해내는 기특한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