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며느리가 시댁에서 산다는 말이죠
단 한 번도 대가족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였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도 내가 기억이 있을 무렵엔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두 할머니들도 내겐 그리 가까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대가족 안에 살게 됐다. 육아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차려 둘만의 알콩달콩한 신혼살림을 만들어 보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철부지 초보 부모는 마냥 아이가 생긴 사실이 신기할 뿐, 이렇다 할 대책도 없었는데 그 무방비 상태를 도리어 더 심각하게 걱정해주신 건 시부모님들이시다.
흔쾌히 '아이는 우리가 키워주마'라고 해주셨다. 출산휴가가 끝날 무렵, 나와 남편, 그리고 신생아 티를 못 벗은 100일도 안 된 아가는 나의 시댁, 남편의 본가로 이사를 갔다.
시댁에 들어가서 산다고 하면, 반응은 두 가지다. 주로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신혼, 그리고 기혼의 남자분들은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한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고? 네가?"
모시고 산다는 말이 민망해서 재빨리 정정한다.
"아, 내가 모시고 사는 건 아니고 시부모님이 거둬주신 거야."
착한 척하는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아이기 생기기 전 집이 좁아서 아이랑 같이 살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렇다고 집을 넓힐 여력은 안됐다. 반면 시댁은 두 세대가 살기에는 충분했고, 아이가 뒹굴 정도의 공간도 넉넉했다.
시댁에서 산다고 해도 내가 하는 것이 별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해 돌아와서 아이를 돌보고 있으면 시어머니께서 저녁을 해주신다. 그 저녁 먹고 설거지하는 것이 내가 하는 가사의 전부다. 물론, 가끔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개는 정도의 일은 하지만. 남편도 주말에 청소기를 돌리고 우리 방 정리 정돈을 하는 정도다. 모시고 산다는 말이 참 민망스러운 부부의 일상이다.
한편, 아이를 낳아 기르는 워킹맘들의 반응은 또 달랐다.
"잘 했어요. 정말 잘 했어."
일을 하다 만나는 워킹맘들끼리는 일종의 연대가 있다. 서로 깨알같이 정보를 교환하고, 아이 엄마가 되면서 새롭게 맞닥뜨리는 낯선 환경에 대해 공감 코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워킹맘들이 내게 "잘 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가족만 한 환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도 있다.
"시댁이랑 양육 스타일이 달라서 힘들지 않아요?" 이 질문을 받고서야, '아, 정말 그 부분이 안 맞으면 힘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그런 갈등은 전혀 없었다.
나 역시, 시댁에 들어가 살아가 보기 전에는 이런저런 걱정들이 들었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양육을 맡아주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걱정들은 일찌감치 멀리 내던져버렸다. 정서적으로도 아직 불안정하고 아이를 한 번도 길러보지도 못한 내가 양육을 전부 책임진다는 두려움에서도 살짝 멀어질 수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네 보호자의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분리불안이 거의 없어, 엄마 아빠가 일주일 여행을 가도 괜찮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다녀왔습니다 ㅎ)
출근한다고 나가도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기를 볼 때, 어린이집에서도 또래 아기들보다 훨씬 빨리 적응을 해낼 때, 엄마 옆에만 있으려 하지 않고 낯선 공간을 씩씩하게 체험해보려 할 때, 나는 대가족 안에서 아이를 키운 것에 대해 100% 만족을 느낀다.